“박근혜 前대통령 강요에 의한 뇌물… 죄 엄히 묻는건 부적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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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신동빈회장 집유 이유

辛회장 234일만에 석방…“국민께 죄송, 더 열심히 노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5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오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의왕=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辛회장 234일만에 석방…“국민께 죄송, 더 열심히 노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5일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오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의왕=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3)이 5일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올해 2월 13일 1심 선고 때 법정 구속된 지 234일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는 신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66·수감 중) 측에 뇌물을 준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수뢰자(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의사 결정이 다소 제한된 상태에서 뇌물공여죄를 엄히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뇌물 요구 압박을 거부하기 어려웠던 점을 형량 감경 사유로 든 것이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의 2심 재판부 판단과 똑같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올 2월 이 부회장 2심 선고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의 경영진을 겁박했다”며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최고 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최순실 씨(62·수감 중)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봤던 것이다.

○ “대통령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신 회장 2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를 청탁하는 대가로 최 씨 측에 K스포츠재단 지원금 명목의 70억 원을 준 혐의에 대해 1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뇌물을 준 게 아니라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직접 요구했고 대통령의 요구가 가벼운 제안이 아니라 불응할 경우 기업 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게 될 거란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고 밝혔다. 또 신 회장에 대해 “자유로운 의사의 뇌물 공여자와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롯데 외에도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응해 K스포츠재단을 지원한 기업이 여럿 있었던 점과 박 전 대통령이 최 씨를 지원하려 한 목적을 신 회장이 몰랐던 점 등이 신 회장에게 유리한 정황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롯데 총수 일가에 공짜 급여를 지급한 혐의 일부에 대해서도 1심과 달리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96)에게 1심(징역 4년, 벌금 35억 원)보다 가벼운 징역 3년과 벌금 30억 원을 선고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신 총괄회장은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 한숨 돌린 롯데

이날 오후 2시 법정 피고인석에는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한 신 명예회장과 신 회장 등 총수 일가 5명이 한꺼번에 피고인석에 섰다.

정장 차림의 신 회장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 측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가 인정된다고 한 뒤부터는 법정 바닥과 허공을 번갈아 쳐다보는 등 불안한 기색이었다. 재판부의 집행유예 선고 직후 신 회장은 표정 변화가 없었다.

신 회장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오면서 만난 취재진들에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한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석방으로 8개월간 해외 신규사업 투자 등 주요 현안 처리가 ‘올스톱’ 됐던 롯데그룹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롯데는 1년 가까운 총수 공백으로 11조 원 규모의 인수합병, 지주사 전환 등 그룹 내 굵직한 현안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롯데그룹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존중한다. 그간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일들을 챙겨 나가는 한편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윤수 ys@donga.com·강승현·황성호 기자
#신동빈#롯데#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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