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방문한 징용피해 유족 뿌리친 전범기업…우익까지 가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20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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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찾아
침묵 시위를 벌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15일 오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미쓰비시중공업 본사를 찾아 침묵 시위를 벌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한국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까지 찾아오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참담한 심정입니다. 아버지 생전에 편하게 사시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신 것이 안타깝습니다.”

15일 오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본사 앞에 3명이 섰다. 강제징용 피해자로 미쓰비시중공업과 소송을 벌여 온 고(故) 박창환 씨의 장남 박재훈 씨(73)와 고(故) 이병목 씨의 차남 이규매 씨(70), 나고야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다 대지진으로 사망한 고(故) 오길애 씨의 동생 오철석 씨(83) 등 피해자 유족들이다. 고인의 사진을 꺼내 침묵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3·1절을 앞두고 도쿄를 찾았다. 도쿄 방문은 지난해 신일철주금 및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 기업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원고 승소 판결 이후 처음이다. 이규매 씨는 취재진에게 “고인이 살아계셨을 때 한을 풀어드렸다면 좋았을텐데 (도쿄에 와서 미쓰비시중공업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나려 한다”며 “오늘 이곳에 와서 (배상과 관련해) 어떤 가능성을 갖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미쓰비시중공업은 대화를 거부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다카하시 마코토(高橋 信)와 데라오 데루미(寺尾光身) 등 공동대표 2명이 이들을 대신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에 들어가 대화를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다카하시 대표는 “이달 말까지 응답이 없으면 다음달 1일부터 한국 내 자산 압류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화해의 손을 내밀기 위해 왔는데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유족과 변호인단은 이미 14일 일본 도쿄 참의원회관에서 일본 국회의원 및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 설명회에는 일본 측에서 이들을 돕는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가와카미 시로(川上詩朗) 변호사와 한국 측 미쓰비시중공업 소송대리인인 최봉태 변호사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유족들은 “실타래가 엉클어지면 풀어야 한다”며 “후손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한일 양국이 우호 관계를 되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일본 중·참의원들은 7명이었다.

15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아
협의를 요청했으나 거절 당한 
한국 변호인단 임재성, 김세은 변호사.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15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아 협의를 요청했으나 거절 당한 한국 변호인단 임재성, 김세은 변호사.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문전박대’를 당한 것은 유족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오후 도쿄 지요다 구 신일철주금 본사를 찾은 강제징용 피해자 변호인단인 임재성, 김세은 변호사도 신일철주금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문전박대는 이번이 3번째다. 신일철주금은 이미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 신청 통보를 받은 상태다. 임 변호사는 “판결에 책임을 져야할 신일철주금이 일본 정부 뒤로 숨기만 하고 있어 정말 유감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며 “(신일철주금 측이) 더 이상 협의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한국에 돌아가면 압류된 신일철주금 소유의 PNR 주식에 대한 매각 명령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오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침묵 시위를 벌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15일 오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침묵 시위를 벌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변호인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미 확정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채권 뿐 아니라 하급심 법원에서 가집행 판결이 선고된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채권에 대한 주식 압류 및 매각 명령 신청도 하겠다고 밝혔다.

15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신일철주금 본사앞에서
한일 변호인단 및 시민 단체 회원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15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신일철주금 본사앞에서 한일 변호인단 및 시민 단체 회원들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15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신일철주금 본사앞에서
우익 단체 회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15일 오후 일본 도쿄 지요다 구 신일철주금 본사앞에서 우익 단체 회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원고 측 한일 변호인단 및 시민단체 회원들은 공동으로 신일철주금을 시작으로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등 3개 전범 기업을 돌며 항의 집회를 열었다. 신일철주금 본사 앞에서 맞불 집회를 연 일부 우익 단체 회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원고의 매각 명령 신청에 반발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강제징용 관련해 한국에 양자 협의를 요청한 상태”라며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은 “한일 관계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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