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오래된 악령 되살아나고 있다”… 번지는 국가주의 경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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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 종전 100년]파리 개선문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

100년전 정전협정 체결 기차 함께 탄 메르켈-마크롱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0일(현지 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에 전시된 열차 객차 
안에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100년 전 연합군과 독일군 협상 대표가 이 객차에서 정전협정을 체결한 뒤 촬영한 
기념사진. 독일 정상이 콩피에뉴 숲을 방문한 것은 2차대전 이후 처음이다. 콩피에뉴=AP 뉴시스
100년전 정전협정 체결 기차 함께 탄 메르켈-마크롱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0일(현지 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에 전시된 열차 객차 안에서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100년 전 연합군과 독일군 협상 대표가 이 객차에서 정전협정을 체결한 뒤 촬영한 기념사진. 독일 정상이 콩피에뉴 숲을 방문한 것은 2차대전 이후 처음이다. 콩피에뉴=AP 뉴시스
11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 무명용사의 묘 앞에 전 세계 85개국 지도자들이 함께 섰다. 정확히 100년 전 같은 시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멈췄다. 4년 동안 약 100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인류 재앙의 역사로 기록된 전쟁이다.

이날 행사에는 승전국인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연합국 정상뿐만 아니라 패전한 동맹국인 독일과 오스만튀르크의 후신 터키 정상도 참석해 비극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다짐했다.

○ “종전은 평화가 아니었다” 마크롱의 외침

1차대전 종전 100주년… 파리 개선문에 모인 세계 85개국 정상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서아프리카 베냉의 싱어송라이터 앙젤리크 키조(왼쪽)가 노래하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전 세계 85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 무함마드 6세 모로코 국왕과 물레이 하산 왕세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부부. 파리=AP 뉴시스
1차대전 종전 100주년… 파리 개선문에 모인 세계 85개국 정상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에서 열린 제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서아프리카 베냉의 싱어송라이터 앙젤리크 키조(왼쪽)가 노래하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전 세계 85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앞줄 오른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 무함마드 6세 모로코 국왕과 물레이 하산 왕세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부부. 파리=AP 뉴시스
이날 오전 파리에는 비가 내렸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 샹젤리제 거리에서 개선문까지 행진하는 동안 검은색 우산이 뒤집어져 비를 맞고 걷는 정상이 많을 정도였다. 개선문에서는 파리 출신의 중국계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한 독일 작곡가 바흐의 첼로곡이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100년 전 1000만 명이 죽고 600만 명이 다치고 각각 300만 명의 과부와 고아를 낳으며 전 세계는 프랑스 땅에서 싸웠다”며 “100년 전 오늘 프랑스 전역에 종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종전은 평화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오늘날 오래된 악령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고 경고하며 “국가주의는 애국주의의 정확히 반대말이다. 그건 배신과 같다”고 경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만찬에 참석한 50개국 정상 부부들 앞에서도 “100년 전 우리 전임자들은 평화를 세우려 했지만 실패했고 20년 후 새로운 전쟁(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며 “평화는 깨지기 쉽고, 그것을 지키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나타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일 개선문 행사장에 15분 늦게 입장했다. 보안상의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며 동맹국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10일 열린 미국과 프랑스의 정상회담도 어느 때보다 냉랭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프랑스로 출발하기 직전 트위터를 통해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 독자군 창설) 발언은 아주 모욕적(very insulting)”이라며 “유럽은 먼저 미국이 엄청나게 많이 보조해주고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분담금부터 공평하게 내야 한다”며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마크롱 대통령이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미국 주도의 나토와는 별도로 유럽 독자군을 창설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양국 정상은 회담 후 “유럽이 나토 분담금을 더 내기로 했다”며 갈등을 잠재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내내 무표정으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 한목소리

10일 오후 마크롱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00년 전 1차 세계대전 정전 협정이 체결된 프랑스 콩피에뉴 숲에 설치된 작은 동판 앞에 섰다. 두 정상은 100년 전 당시 페르디낭 포슈 연합군 총사령관과 독일 협상 파트너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의 정전협정 서명이 진행됐던 객차를 재현한 기념관 안으로 함께 들어갔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은 지난 73년 동안 평화를 유지했는데 이런 전례는 없다”며 “이는 독일과 프랑스가 평화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도 “독일은 세계가 더 평화로울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둔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독일 두 정상이 이 장소에서 만난 건 2차대전 이후 처음이다.

메르켈 총리는 11일에도 샹젤리제 거리 행진과 개선문 행사 내내 마크롱 대통령 옆에 함께 했고 자국의 침략으로 시작된 1차대전의 참상을 전하는 행사를 묵묵히 지켜봤다. 두 정상은 이마를 맞대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분을 과시했다.

메르켈 총리가 파리에 머물던 시각,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테리사 메이 총리가 런던 화이트홀 기념비 앞에서 개최한 종전 행사에 참석했다. 100년 전 침략국이었던 독일의 대통령과 총리가 같은 날 각각 피해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찾아가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향한 화합의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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