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실, 언론인 실종 꼬리 자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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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신문 중 실수로 사망 인정… 왕실과 무관-관련자 문책 발표할듯”
트럼프, 폼페이오 급파 사태 수습

‘영사관 내에서 신문을 하던 중 예상치 못하게 사망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 들어간 뒤 실종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59·사진)의 행방을 두고 ‘모르쇠’로 일관해 왔던 사우디 정부가 이같이 입장을 바꿨다. 터키 정부 등이 주장해 왔던 ‘계획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 사고’로 해명함으로써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15일 미국 CNN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카슈끄지가 신문을 받다가 잘못돼 사망했다고 인정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사우디 정부가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이번 사건은 사우디 왕실의 승인 없이 이뤄졌으며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사우디 정부가 자국 정보원이 신문 도중 실수로 카슈끄지를 살해했다고 인정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때문인지 “(사우디 배후설이) 사실이라면 매우 화가 날 것이다. 우리(미국)는 가혹한 처벌을 할 것”이라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수위도 다소 낮아졌다. 그는 15일 기자들에게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약 20분 동안 통화를 했다”며 “어쩌면 이 사건은 ‘불량배 살인자(rogue killer)’가 범인일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에게는 그와 왕세자가 (사건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카슈끄지 실종 사건 사태 수습을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사우디로 급파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사우디 국왕을 만난 뒤 16일 사건이 발생한 터키로 향할 예정이다. 터키·사우디 합동 조사팀은 14일부터 카슈끄지가 실종된 사우디 영사관을 조사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사우디 왕실이 카슈끄지 살해 책임을 피하려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우디 왕실이 개입됐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보수·강경 성향이 강한 사우디의 이미지를 바꾸려 앞장서 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개혁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큰 탓이다.

실종된 카슈끄지 가족들은 15일 성명을 내고 “사망 정황을 조사할 독립적이고 공정한 국제 위원회 구성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칼럼을 써 온 카슈끄지는 약혼자와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받기 위해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한 뒤 연락이 끊겼다.

그동안 터키 및 미국 정부가 결정적 증거들을 확보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미 정치권에서 “사우디에 군사 장비 및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는 제재론까지 나오면서 사우디 정부는 점차 궁지로 몰리는 모양새였다.

카이로=서동일 특파원 dong@donga.com
#사우디 왕실#언론인 실종 꼬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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