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비서는 대부분 여성, 왜? “소비자가 여성 목소리 선호”… 성적 편견 고착화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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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에이산업과 코코로 컴퍼니가 지난해 10월 출시해 판매하고 있는 ‘접수원’ 로봇(왼쪽 사진)과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아이치이의 인공지능(AI) 비서 ‘비비’. 사진 출처 일본 코코로 홈페이지·아이치이
일본 교에이산업과 코코로 컴퍼니가 지난해 10월 출시해 판매하고 있는 ‘접수원’ 로봇(왼쪽 사진)과 중국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아이치이의 인공지능(AI) 비서 ‘비비’. 사진 출처 일본 코코로 홈페이지·아이치이
최근 일본의 쇼핑몰과 호텔 등에는 ‘접수원’ 로봇이라 불리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호감이 가는 외모의 로봇은 안내 데스크 등에서 고객을 응대한다.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로도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다. 안면인식 기능도 갖췄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휴머노이드를 개발해왔다. 최근엔 상업적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일본 교에이산업이 작년 10월 출시한 접수원 로봇 가격은 900만 엔(약 9100만 원) 정도.

접수원 로봇은 사람과 흡사한 외모와 목소리로 언론에도 종종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접수원 로봇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이 여성형 로봇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권위자 아라이 노리코 일본국립정보학연구소 교수는 최근 아사히신문 칼럼을 통해 “접수 일을 하는 사람은 순종적이고 예쁜 젊은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허용하고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며 “서양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의 성적 편견이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세계 첨단기술 업계에서는 도우미 로봇이나 AI 비서의 성 편향이 민감한 이슈로 떠올랐다. 애플의 ‘시리’, 아마존 ‘알렉사’,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등 대부분의 AI 비서는 출시 당시 여성의 목소리와 이름을 가졌고 이후에 남성 버전이 추가됐다. 구글은 올 5월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 영어 버전에 남성 R&B 가수 존 레전드의 목소리를 추가해 남녀 3명씩 모두 6종의 목소리를 갖췄다. 국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내놓은 AI 비서가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를 가진 데 비해 구글 한국어 버전은 현재 남성 목소리로만 지원된다.

AI에 입혀진 왜곡된 여성상이 반발을 사기도 한다. 중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아이치이는 지난해 말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하는 등 여성 AI 비서 캐릭터를 선정적으로 만들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AI 비서 ‘빅스비’를 내놓을 때 차별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음성 성별을 선택하도록 했지만 예상치 못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일부 소비자는 빅스비의 남성과 여성 음성을 설명하는 해시태그(#)에 남성은 ‘적극적이고(assertive) 자신감 넘친다(confident)’, 여성은 ‘명랑하고(chipper) 쾌활하다(cheerful)’는 형용사를 쓴 것을 지적하며 ‘성적 선입견에 기반을 두었다’라고 평가했다.

업계에서는 도우미 로봇이나 AI 비서에 여성의 외모와 목소리를 입히는 것은 소비자 선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코타나 팀 소속 작가인 데버러 해리슨은 “사전 테스트에서 여성 목소리에 대한 반응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국내 업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AI스피커 ‘기가지니’ 서비스를 하는 KT 관계자는 “귀에 잘 들어오는 목소리를 찾다 보니 여성 목소리가 채택된 것”이라고 했다.

남성 목소리를 가진 AI 비서가 없는 건 아니다. 애플은 다른 영어권 국가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남성 목소리를 가진 시리를 내놨다. 저스틴 커셀 미국 카네기멜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포함한 일부 전문가는 애플이 이 같은 선택을 한 이유가 과거 영국의 남성 하인 문화 때문일 것이라고 봤다. 독일의 자동차회사 BMW가 여성 목소리가 담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내놓자 남성 운전자들 중 일부는 ‘여성의 지시에 따르기 싫다’는 취지의 불만을 터뜨린 경우도 있다.

로봇이나 AI가 차별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아마존과 구글 의 AI 스피커 영어 인식률은 말하는 사람의 억양에 따라 차이가 났다. 구글 AI 스피커의 경우 미국 동부 영어 억양 인식률은 91.8%였지만 스페인식 영어 억양 인식률은 79.9%에 그쳤다. 국내 AI 스피커나 음성인식 기술 역시 어린이나 노인의 말투, 사투리에 대한 인식률은 표준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국내 한 음성인식 연구자는 “초기 표본이 표준어 사용자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인간형 로봇이나 AI 비서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기술이 다시 편견과 차별을 강화시킬 것을 우려한다. 이에 따라 AI 개발에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소수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IT 기업 라이브퍼슨의 최고경영자(CEO) 로버트 로캐시오는 5월 포천 기고문에서 “미국 20대 기술기업 중 18곳의 CEO가 남성이고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 5명 중 1명만 여성”이라며 “여성 리더 등 균형 있는 채용을 통해 남성 중심의 편견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ai 비서#성적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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