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생수’ 탄생 비결 땅속에 있더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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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독일 등 생수 강국들 수년간 ‘지질 조사’에만 몰두
토양-지하수원 지도도 만들어… 국내서도 유럽 방식 벤치마킹

독일연방지질조사소(BGR)의 한 연구자가 물속에 녹아 있는 수소와 산소, 탄소의 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 ‘안정동위원소 분석장비’를 이용해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장비를 이용하면 지표수나 지하수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있다.
독일연방지질조사소(BGR)의 한 연구자가 물속에 녹아 있는 수소와 산소, 탄소의 비율을 확인할 수 있는 ‘안정동위원소 분석장비’를 이용해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장비를 이용하면 지표수나 지하수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 있다.
“에비앙은 프랑스의 지역명이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이름을 듣고 고급 생수를 떠올립니다. 여기에는 치밀하고 과학적인 수자원 연구가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독자적인 지하수 연구를 시작할 때라고 봐요.”

고경석 지질자원연구원(지질연) 지질환경연구본부장은 최근 ‘물 박사’라고 불린다. 국내 수원지를 조사하는 ‘좋은 물 연구사업’을 지난해부터 책임지고 있다. 그가 동료 연구자 2명과 이달 4일부터 열흘간, 매일같이 비행기와 열차를 타고 다니며 유럽 곳곳을 찾아다닌 것도 이런 이유다. 세계적인 명품 생수를 개발하려면 생수 선진국인 유럽의 연구 현황을 살펴봐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연구진에 관련 연구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BGR 연구진.
한국 연구진에 관련 연구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BGR 연구진.
고 본부장 일행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고속철(TGV)을 타고 두 시간 남짓 이동해 6일 오후(현지 시간) 찾아간 곳은 독일 북쪽 중소도시 하노버에 자리한 독일연방지질조사소(BGR). 독일 정부는 대부분의 연구기관을 ‘연구회’라는 상급기관에 맡겨 운영하지만 BGR만큼은 직접 운영한다. 연구자들도 모두 공무원 신분이다. 국가 근간인 지질조사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명감이 반영됐다.

BGR 연구진은 수자원 지도 제작에 관심이 크다. BGR는 2012년 전 세계 지표수(강과 호수 등) 지도를 완성한 데 이어, 지난해엔 수년간의 조사 결과를 통해 ‘세계 석회암 지역 토양 및 지하수원 세계지도’를 완성했다. 양질의 지하수는 물에 녹는 석회암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특성상 우선 그 지도부터 그려낸 것이다. 토마스 히멜스바흐 BGR 수자원연구본부장은 “1960년대 이전부터 지질조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유럽 전역에 대해 조사를 벌여 왔다”면서 “이런 결과는 무상으로 제공되어 세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현재 BGR의 관심 분야는 해안가 조사다. 바다 근처엔 지하수가 드물 것 같지만 의외로 자주 발견되므로 이 자원을 활용하겠다는 것. BGR는 전용 전파 탐지장치를 갖춘 헬리콥터를 이용, 지표 땅속 100m 아래까지 지하수를 확인하는 작업을 최근 시작했다. BGR의 우베 마이어 연구원은 “곧 유럽 및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탐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장을 방문한 고동찬 지질연 책임연구원은 “BGR는 중동, 중앙아시아 등의 오지까지 조사에 나서는 등 전 세계에 걸친 수자원 정보 확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독일이 학술적 목적의 지질조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 프랑스 연구진은 직접적인 수원지 발굴과 환경 보전에 관심이 크다. 좀 더 산업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연구진은 11일 프랑스 몽펠리에 지역에 있는 프랑스 지질광업연구원(BRGM) 분원을 방문해 협력을 논의했다. 이곳은 수자원 전문 연구진이 모여 있는 프랑스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 BRGM은 기업 친화적으로 연구를 시행한다. 다논(에비앙 생산기업), 네슬레 등과의 공동 연구도 자주 있다. 이런 연구 결과는 기업체의 안정적인 생수 생산과 수질 관리에 쓰인다.

유럽의 지하수 의존율은 75%. 프랑스는 60% 정도이며 남부 독일도 이와 비슷하다. 유럽 각국이 지하수 자원을 조사, 관리하는 지질조사 역량이 뛰어난 이유다. ‘좋은 물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류종식 기초연 책임연구원은 “BRGM이 연구 결과를 기업과 적극 공유하는 시스템은 국내에서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좋은 물 연구진은 이번 경험을 한국형 수질조사의 기준을 치밀하게 가다듬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이들은 국내 약 500개 수원지에 대한 수질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중 사업성이 높은 수원지를 별도 선정해 지질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고경석 본부장은 “독일과 프랑스는 지질조사 결과를 그래픽과 지도로 알아보기 쉽게 만든다”며 “수질조사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인터넷 정보 시스템 구축에 이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노버·몽펠리에=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명품 생수#지질조사#독일#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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