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정치싸움에 휘말린 ‘좀도둑 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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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채널A 공동취재]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6일 도쿄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어 보였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6일 도쿄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어 보였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지난달 제71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 영화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좀도둑 가족)’이 8일 일본에서 개봉됐다.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56) 감독의 작품으로 개봉 직전 이틀간 열린 유료 시사회에서만 15만2872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일본 언론들은 “고레에다 감독 작품 중 최고 흥행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개봉 당일 고레에다 감독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립은 그만하고 싶다”며 심경을 밝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日 정치 싸움에 휘말린 칸 수상작

도쿄의 변두리 마을이 배경인 이 영화는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모여 도둑질을 하며 생계를 꾸린다는 내용이다. 실화를 각색한 이 영화는 점점 더 양극화되는 사회와 가족의 붕괴, 빈곤층 등 현재 일본 사회의 문제들이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침묵이 논쟁의 발단이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최근 “고레에다 감독이 최고 권위의 세계 영화상을 받았는데 아베 총리가 축전을 보내지 않고 있다”며 “감독이 영화에서 일본의 정치를 고발해 왔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2일 도쿄신문도 전문가를 인용해 “총리가 도량을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고레에다 감독이 최근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 태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도적인 침묵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자 야당들이 아베 총리를 비판하고 나섰다. 7일 참의원 문부과학위원회에서 가미모토 미에코(神本美惠子) 의원(입헌민주당)이 이 문제를 거론하며 추궁하자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문부과학상은 “조만간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아베 총리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레에다 감독은 8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좌든 우든 공권력과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다. (영화로 인한) 좌우 대립을 그만하고 싶다”며 정부의 축하 메시지에 대해 거절의 뜻을 밝혔다.

○ 우익들 “(축하에) 침묵하는 것이 국가의 품격”

앞서 고레에다 감독은 6일 도쿄 기자회견에서 “최근 일본 영화가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해외에서 지적받고 있다. 흥행을 고려하다 보니 대형 배급사조차 정치적 주제를 풀어내는 데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소신 발언을 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듯한 감독의 언행이 이어지자 일본 내 우익 세력이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평소 우익 성향 발언을 해 온 한 의사 겸 방송인은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만비키 가족을 칭찬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의 수치가 아닐까. (축하에) 침묵하는 것이 국가의 품격”이라고 적었다. NHK경영위원이자 우익 소설가인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 씨도 ‘일본은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고레에다 감독의 칸 영화제 인터뷰 내용을 지적하며 “별거 아닌 것을 외국까지 가서 이야기한다”고 비난했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일본 정치싸움#좀도둑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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