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훈]‘알아야 하는 것만 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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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 시리즈는 MI6(영국 해외정보국) 미남 공작원의 활약상을 다룬다. 007의 이름 제임스 본드는 가명이고 ‘007’이 코드명이다. 베일에 가려진 이 비밀 공작원의 신상에 대해선 정보기관 수장도 알려 하지 않는다. ‘차단의 법칙’이다. ‘알아야 하는 것만 알라(Know only to need to know)’는 정보기관의 철칙(鐵則)이다.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작업 과정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비밀취급 인가도 받지 않은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민간인들이 정보기관 컴퓨터 메인 서버자료 제출을 요구해 본 것이다. 중국 내 북한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출 사건에 문제가 없는지도 확인했다. 국정원 요원과 중국 내 협조자들의 신상명세도 포함된 최고기밀로 분류된 자료다. 먼저 보고 비밀취급 인가를 나중에 받긴 했다. 이 TF에는 진보성향 일색의 교수 변호사 시민단체 간부들이 참가했다.

▷전 국정원장 A 씨는 “민간인이 국정원 컴퓨터 메인 서버를 마구 본 사태는 참으로 심각하다”고 말했다. 원장 때 해외공작원 신상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정보기관 최고기밀을 보게 했다면 책임자는 나중에라도 무겁게 다스려야만 한다. A 씨는 최악의 수장들로 김만복 원세훈 전 원장을 꼽았다. 정보기관을 서울시처럼 여기고 뇌물을 받은 원 전 원장이나 과시욕이 강한 김 전 원장이나 난형난제(難兄難弟)로 봤다. 김 전 원장이 2007년 대선 전날 북한에 왜 갔는지, 김정일에게 무심코 기밀누설은 하지 않았는지 혀를 찼다.

▷2010년경 오사마 빈라덴 측근과 국내 보석상의 통화를 감청한 국정원은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기관에 알려줬다. 테러나 마약 정보만 아니라 정보기관 간 정보 공유는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정보기관끼리만 A급 정보까지 공유한다. 최고기밀이 공개되는 정보기관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불시에 적의 공격을 받는다는 건 ‘정보의 실패’를 뜻한다. 우리 국정원만 C급 정보만 공유받는 C급 정보기관으로 따돌림당한다면 안보에 큰 구멍이 뚫리는 셈이다. 참 큰일이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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