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6>꿈엔들 잊힐 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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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하게 유목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태어났고 조상들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고향 땅을 향한 그리움이 그것이다. 정지용 시인의 시구처럼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도, 유별나게 ‘파아란 하늘빛’도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런데 유목민에게 고향이 상처일 때가 있다. 중국계 미국 작가 하진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스물아홉 살이던 1985년에 미국 유학을 떠난 후로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시발점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그는 중국 군대가 평화로운 시위를 하는 젊은이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그러한 나라를 위해서는 더 이상 봉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살기 위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무모한 시도였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문화대혁명, 홍위병, 공산당, 전쟁과 관련된 어두운 근대사를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시각에서 형상화한 빼어난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체호프와 고골의 소설을 연상케 하는 응집력과 통일성, 위트와 유머는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재능과 저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간단한 문장만 갖고도 원어민들보다 더 맛깔스럽고 완성도 높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인들에게 보여줬다. 급기야 그는 전미도서상을 비롯한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유명 대학 교수까지 되었다.

그를 낳은 중국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증오와 중상모략’이었다. 그 배후에는 근대사에 강박관념이 있는 공산당이 있었다. 그들은 그를 ‘외국 독자들의 구미를 만족시키려고 중국을 왜곡하는 매국노’라고 몰아치며, 고향도 빼앗고 부모도 빼앗았다. 그래서 그는 중국을 떠난 후로 다시는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는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못하는 불효자가 되었다.

고전적 품격을 갖춘 그의 스토리 뒤에는 이러한 국가 폭력의 상처가 어른거린다. 하얼빈의 첫 글자를 따 영어 이름을 ‘Ha’라고 지을 정도로 조국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입국을 거부당하고 유목민의 쓸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중국을 생각하면 미칠 것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 중국은 ‘야만스러운 나라’다. 그렇다고 그 고향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그리움은 계속된다. 상처가 치유될 가능성이 전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고향이고 조국이니까. 그런데 이것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얘기가 아니다. 위대한 작곡가가 된 윤이상에게도 고향은 그리움과 상처였을 테니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유목민의 삶#유목민의 고향#톈안먼 사건#중국계 미국 작가 하진#하얼빈#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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