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대의 모바일 칼럼] “북한, 6000억 달러 무상원조시 핵 폐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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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 폐기를 조건으로 10년간 매년 600억 달러의 무상원조와 북미(北美) 간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했다.”

최근 중국의 여러 매체 온라인 사이트에 올라있는 내용이다. 보도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중국이 지난해 8월부터 북한과 핵 포기를 전제로 한 비밀 협상을 진행해왔고, 협상은 현재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요구 조건은 현재 4가지. 앞으로 10년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한국 등 5개국이 무상으로 매년 600억 달러씩 북한에 제공하며, 미국과 북한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협정을 통해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면 북한은 3년 내에 핵 동결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핵 폐기 단계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은 유관 국가와 유엔 전문가들의 감독 아래 북한이 60일 이내에 핵 시설과 원료를 폐기하되 경제원조의 형식과 금액은 별도의 고려대상이라고 주장해 팽팽한 샅바싸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당초 이 내용을 보도한 곳은 홍콩 유력 월간지 정밍(爭鳴) 5월호다. 중국 외교부는 아직 공식 반응이 없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외교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600억 달러는 북한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280억 달러(CIA 추산)의 2배가 넘는 금액이다. 북한은 물가를 감안한 총생산(PPP) 역시 400억 달러에 불과하다. 설령 그런 제안이 있었다 한들 어느 국가가 그 많은 돈을 대겠느냐는 반응이다. 북한 역시 협상을 통해 핵 완성의 시간을 벌자는 속셈일 뿐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중국은 그동안 ‘가짜 뉴스’나 ‘민감한 뉴스’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대부분 지웠다. 처음에 올라왔다 할지라며 하루 이틀 지나면 그냥 사라진다. 다시 찾으려 하면 ‘법률에 저촉돼 검색이 불가능하다’는 경고문이 나온다. 중국 공산당이 아직도 서방 세계와 다른 평가를 하는 ‘천안문 사태’는 아예 중국의 종합검색사이트 바이두(百度)에서 검색이 안 된다. 1989년 6월 4일 발생해 중국에선 ‘6·4 사태’라고도 부르지만 ‘6·4 사태’를 쳐도 엉뚱한 내용만 뜬다. 어렵게 천안문 사태를 찾아들어가 보면 ‘극소수의 반혁명 분자들이 한 달 넘게 폭동을 일으켜 계엄부대가 평정한 사건’이라고 나온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북한 관련 문제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특히 북핵은 어느 사안보다 휘발성이 크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정밍의 보도 내용을 일주일째 지우지 않고 있다. 정밍은 지난달 16일 중국 외교부가 박명호 주중 북한대사관 공사를 초치해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 석유공급 중단, 북중 국경 폐쇄 등을 포함한 엄중한 제재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내용도 있지만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중국 인터넷엔 북한의 요구로 과거에 모조리 지웠던 진싼팡(金三胖·김씨 집안 뚱보 3세, 김정은 지칭)도 모두 되살아났다. 중국이 1968년부터 1973년까지 평양 지하철 건설 당시 철도병 2개 사단 약 9만 명과 기술, 물자 등을 지원해서 건설했음에도 김일성은 1973년 1차 개통식에서 “평양 지하철은 우리의 자주기술과 인력으로 모두 건설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반세기전 과거까지 들춰내 비난한 내용도 있다. 중국의 누리꾼 중에는 “북한의 핵무기와 생물학,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는 모두 우리에게 위협이고 북한에서 전쟁이 나면 대량 난민은 모두 우리 영토로 들어올 텐데 왜 우리는 북한을 두둔하느냐”며 정부 정책에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북한은 중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중국 정부가 이런 민감한 내용, 심지어 중국 정부의 대북 기조에 비판하는 내용까지 이례적으로 그대로 놔두는 것은 정치·외교적 심모원려(深謀遠慮)가 깔려있다는 분석이 많다. 우선 정치적인 면에서 자국민들에게 북한에 대한 반감이 조성되는 걸 중국 정부가 묵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외교적으로는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면서 한국 미국 일본 등에는 우리가 북핵과 관련해 이처럼 협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은근히 보여주고자 한다는 분석이다. 배경과 경위가 어쨌든 중국의 이런 태도 변화는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는 데 긍정적 신호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종대 논설위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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