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의 핫 피플] 獨 메르켈 위협하는 ‘아돌피나’ 프라우케 페트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6일 11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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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총선에서 4연임에 도전해 유럽 역사상 최장수 총리를 넘보는 ‘여제(女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63)가 좌우 양쪽에서 거센 협공을 받고 있다.

좌파에선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62)이 있다. 그가 이끄는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정당 지지율과 총리 후보 개인 지지율에서 모두 메르켈과 집권 여당 기독민주당을 앞서고 있다.

우파의 경우 초강경 반(反)난민, 반이슬람 정책을 표방한 극우 독일대안당(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대표(42)가 있다. AfD는 2013년 출범한 신생 정당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극우 정당 최초로 독일 연방의회 입성이 유력할 정도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 “이슬람은 독일의 일부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난민을 향해 발포하겠다”는 페트리가 있다.

슐츠 전 총리와 사민당 지지율 상승은 페트리와 AfD가 야기한 ‘나비 효과’ 측면이 크다. 페트리가 반난민을 주창하며 인기를 얻자 메르켈이 ‘우향우’했고 이를 파고든 슐츠 전 의장이 “무기력한 메르켈을 갈아치우자”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페트리는 메르켈과 공통점이 많다. 그 역시 동독 태생, 과학자 출신 여성 정치인이다. 4연임이 유력했던 메르켈의 최대 장애물, 페트리는 누구일까.


<이민자가 독일 경제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페트리>

○화학박사 출신 아돌피나(Adolfina)



페트리는 1975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독일 통일 2년 후인 1992년 가족과 함께 서독 베스트팔렌으로 이주했다. 괴팅엔대 재학 중 영국 유학을 떠나 레딩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모교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땄다. 루터교 목사 스벤 페트리와 결혼해 네 자녀를 뒀다. 2007년 타이어 제조에 필요한 친환경 플라스틱 물질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해 사업가로도 변신했다.

평범한 삶을 살던 페트리는 2013년 4월 AfD에 가입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우파 경제학자 베른트 룩케 등이 설립한 독일대안당은 기민당의 온건 보수성향에 불만을 갖고 강력한 독일 우선주의 정책, 반 EU 노선을 추구했다. ‘독일 국민 세금이 그리스나 이탈리아 정부 부채 해소에 쓰여선 안 된다’는 게 골자였다.

이처럼 당시 AfD는 유로 사용, EU 추가통합 정도만 반대했다. 하지만 2015년 7월 페트리가 룩케를 몰아내고 당권을 잡으면서 급격한 극우 노선을 걷는다. 단순한 반 EU가 아니라 이슬람 베일 착용, 이슬람 사원, 이슬람 기도방송 전면금지 등 인종차별 색채가 짙은 반이슬람 정책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페트리에게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을 딴 별칭 ‘아돌피나(Adolfina)’가 붙은 이유다.

○AfD의 선거 약진



2015년 8월 31일 메르켈 총리는 난민 전면 포용을 선언한다. 며칠 후 시리아 꼬마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고 전 세계적으로 난민 동정 여론이 높아지자 메르켈은 ‘난민의 엄마’ ‘마더 메르켈’로 칭송을 받는다.

하지만 2015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1년 동안에만 약 140만 명의 난민이 몰려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대다수 난민이 독일어를 배우거나 독일 문화에 익숙해지지 않으려 했다. 이 와중에 일부 난민의 테러와 성폭력이 일어나자 극우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2016년에만 약 400억 유로(50조 원)가 들어간 난민 지원비도 버거웠다. “장기적으로 난민이 독일 사회와 경제에 기여할 것”이란 메르켈의 외침은 힘을 잃었다.

AfD와 페트리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난민이 독일 경제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은 동화(fairytale)다. 인구 증가가 필요하면 자녀를 3명씩 낳으면 된다”고 주장한 페트리 덕분에 AfD는 2016년 주요 선거에서 잇따라 약진하며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정계를 양분해온 기민당과 사민당을 위협하고 있다.

2016년 3월 바덴뷔르템베르크 등 3개 주 의회 선거에서 의석을 차지한 AfD는 같은 해 9월 7개 주 의회에 추가 진출하며 독일 전체 16개 주 중 10개 주 의회에 입성했다. 2016년 9월 4일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2주 뒤 9월 18일 베를린 주 선거는 ‘정치인 페트리’의 위력을 입증한 선거였다. AfD는 메르켈의 지역구 슈트랄준트가 속한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선거에서 사민당에 이어 일약 2위 정당으로 발돋움했다. 기민당은 3위로 처졌다. 게다가 ‘독일의 심장’ 베를린 주에서는 극우 정당 최초로 주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메르켈은 자신의 정치적 고향과 독일 정치 1번지 선거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그 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 난민유입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며 ‘우향우’ 수정을 공식화했다.

빌트 등 독일 언론 역시 독일 사회의 전반적 반난민 정서를 고려하더라도 젊은 나이(당시 41세), 네 자녀를 둔 워킹맘, 항상 미소를 띤 모습 등 페트리의 개인적 매력이 선거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발포’ 운운하는 초강경 반난민 정책을 주창하는 사람답지 않게 페트리에게는 ‘싸움닭’ 이미지가 거의 없다. 항상 미소를 띤 채 차분히 얘기하는 그의 대화 스타일 덕분이다.

○AfD와 페기다



페트리의 고향 드레스덴은 낙후된 동독 공업지대인데다 중동과 동유럽을 거친 난민이 독일로 들어오는 주요 통로여서 유독 반난민 여론이 높다. 특히 이 곳은 페기다(PEGIDA) 즉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 운동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2014년 10월 역시 드레스덴 출신의 루츠 바흐만(44)이 창설한 페기다는 AfD보다 더 강경한 극우, 반난민 정책을 표방한다. 바흐만은 ‘난민은 쓰레기(trash)’라는 말을 공공연히 내뱉어 약 1만 유로(125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소셜미디어에는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사진을 올렸다 여론 뭇매를 맞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독일 전역으로 확대되는 페기다의 반난민 집회>

정치인 페트리의 영리한 점은 이 페기다를 이용하는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AfD와 페기다는 반난민 집회 등 서로의 명분이 일치할 때 적절히 협력하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페기다 조직이 동독에서 독일 전역으로 확대되자 당초 AfD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서독 지역에서의 AfD 지지율도 상승세다.

다만 늘 선을 넘는 페기다와 달리 페트리는 나치 잔재를 부끄러워하는 상식 있는 독일인이 우려할 선은 넘지 않는다. 바흐만이 나치 연상 사진을 올렸을 때 페트리는 재빨리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며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페기다와 정식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AfD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히 선을 긋고 있다.

○연방의회 입성 눈 앞




20세기 초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소수정당 난립과 이로 인한 나치 출현을 경험한 독일은 득표율 5% 미만인 소수정당의 연방의회 진출을 금지해 왔다. AfD는 설립 직후인 2013년 9월 총선에서 4.7%의 지지율로 연방의회 입성에 실패했다. 극우정당이 연방의회 문턱 앞까지 왔다는 사실은 나치 독재의 금기가 여전한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당시에도 불과 0.3%p 차이로 실패한데다 최근 AfD와 페트리 모두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어 9월 총선에서는 연방의회 입성이 유력하다.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등장, 친(親) EU 성향의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 실각, 프랑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과 네덜란드 극우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급부상 등 전 세계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극우, 자국 우선주의 바람은 페트리에게 더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페트리는 2015년 10월 남편과 이혼하고 극우 성향 연방의원 마르쿠스 프레츨(44)과 동거 중이다. 프레첼은 르펜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다. EU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에서 모두 극우 정치인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이슬람은 결코 독일의 일부가 될 수 없다”는 페트리 대표와 “난민 문제에 대한 독일과 유럽 각국의 큰 연대가 필요하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에 반대한다”는 마르틴 슐츠 사민당 총리 후보. 둘 사이에 어정쩡하게 낀 메르켈 총리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계속 지지율을 갉아먹고 있다. 과연 올해 9월 독일 총선의 승자와 패자는 누가 될 것인가.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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