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원하는 10대女 납치해 결혼 강요, ‘신부 납치’ 악습 충격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5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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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데일리메일 영상 캡처
사진=데일리메일 영상 캡처
납치된 10대 소녀가 울고 비명을 지르며 강제로 결혼식장에 끌려가는 모습을 담은 카자흐스탄의 '신부 납치' 영상이 공개돼 비난을 사고 있다.

14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메일은 카자흐스탄 아크볼라 지역에서 촬영된 '신부 훔치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소개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해당 영상에는 한 10대 소녀가 자신을 신붓감으로 점찍은 남성의 집에 강제로 끌려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카자흐스탄 전통 음악이 흐르는 한 주택 앞에 결혼식 하객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검은 차량 뒷좌석에 앉은 평상복 차림의 10대 소녀가 울음 섞인 비명을 지르며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차량을 둘러싼 남녀 무리는 소녀를 강제로 끌어내린 뒤 그 앞에 카펫을 깔고 흰색 천을 들이밀며 집안으로 데려가려 한다.

소녀가 완강하게 거부하자 결국 두 남성이 소녀의 몸을 번쩍 들어 옮기고, 주변에서는 축하용 색종이가루를 뿌려댄다. 소녀는 끝까지 집안에 들어가길 거부해보지만 결국 등 떠밀려 집안에 발을 들이면서 영상은 끝이 난다.

이 충격적인 영상은 카자흐스탄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일명 '납치혼' 또는 '약탈혼'의 모습을 담고 있다. 말 그대로 신붓감을 납치해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현대판 '보쌈'인 셈이다.

결혼을 원하는 남성이 마음에 드는 여성을 점찍으면 남성의 친척이나 친구들이 해당 여성을 자동차로 납치해 데리고 온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아무 여자나 납치하는 경우도 있다.

예비신랑의 가족은 납치돼 끌려온 여성에게 흰색 천을 건네는데, 이 천을 받아들이면 결혼에 응한다는 뜻이다. 만약 동의하지 않고 버티면 며칠 동안 감금되기도 한다.

납치된 신붓감은 대개 격렬히 저항하지만 대부분 결국 결혼을 받아들인다. 결혼에 응하지 않아 벗어나더라도 '손 탄 여자'로 인식이 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납치된 여성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폭행과 성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생긴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악습이 증가세를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

'신부 납치'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현지의 여성인권 운동가 안피사 주예바(30)는 "어린 소녀에게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강제하는 건 야만적인 악습"이라며 "사람들이 우리 국민을 보고 뒤쳐졌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랑이 많은 돈을 지불함에 따라 피해자의 가족이 '신부 납치'에 동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처럼 낡고 끔찍한 악습은 사라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카자흐스탄 하원의원들은 "성인의 60% 이상, 10대의 약 74%가 '신부 납치'의 피해자이거나 그러한 피해자를 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에 대한 법적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 '신부 납치' 행위가 불법화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이 같은 악습이 존재한다. 지난해 국제인권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매년 8000~1만2000여 명의 여성이 '신부 납치'를 당하고 있다. 이 가운데 5000여 명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강제로 결혼을 하고, 2000여 명은 성폭행을 당해 어쩔 수 없이 결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정아 동아닷컴 기자 cja09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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