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船 몰락’ 스웨덴 말뫼, ‘에코 시티’로 변신 비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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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대개조/선진국 구조조정 현장]<1> 新성장동력 찾은 스웨덴 말뫼

《 2002년 세계 최대의 조선소 크레인을 울산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아야 했던 스웨덴 남부 항구도시 말뫼. 한국 조선업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했던 스웨덴 조선업의 구조조정에 얽힌 사연을 현장 취재했다. 말뫼는 철저한 구조조정을 통해 청정에너지와 바이오, 정보기술(IT) 등 지식기반 산업도시로 재탄생했다. 이 도시가 어떻게 ‘말뫼의 눈물’이라는 아픔을 딛고 ‘내일의 에코시티’로 재탄생하게 됐는지 그 비결을 말뫼 현장에서 알아봤다. 》
 

조선소 자리가 바이오 메카로… “미련 버렸더니 살길 보여”

①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는 정부가 10여년에 걸쳐 수조 원의 자금을 지원했음에도 경쟁력을 상실해 1986년 문을 닫았다. 2002년 한국의 울산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려 ‘말뫼의 눈물’로 불린 코쿰스 크레인. ②1986년 코쿰스 조선소 폐쇄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조선소 노동자들. ③구조조정 이후 지식기반 산업도시로 재탄생한 말뫼의 시가지 전경.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 친환경 에너지자립 건물인 ‘터닝 토르소’가 말뫼의 랜드마크로 우뚝 솟아 있다.
스웨덴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는 정부가 10여년에 걸쳐 수조 원의 자금을 지원했음에도 경쟁력을 상실해 1986년 문을 닫았다. 2002년 한국의 울산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려 ‘말뫼의 눈물’로 불린 코쿰스 크레인. 1986년 코쿰스 조선소 폐쇄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는 조선소 노동자들. 구조조정 이후 지식기반 산업도시로 재탄생한 말뫼의 시가지 전경.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 친환경 에너지자립 건물인 ‘터닝 토르소’가 말뫼의 랜드마크로 우뚝 솟아 있다.
“정말 슬픈 날이었습니다. 바다 건너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도 보였던 조선소 크레인이 한국으로 팔려 간 날이었죠. 내가 일했고 내 아들과 손자까지 일할 곳이라고 믿었는데…. ‘말뫼의 영혼’이 팔려 간 듯했습니다.”(헨리크 맛손 씨·67)

이달 2일(현지 시간) 스웨덴 남부 항구도시 말뫼에서 만난 시민들은 아직도 2002년 9월 25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 말뫼의 랜드마크였던 138m 높이의 코쿰스 조선소 크레인이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약 1160원)에 팔린 날이었다. 언론에서 ‘말뫼의 눈물’로 불린 이 크레인은 이후 울산에서 붉은색 페인트칠로 다시 태어나 한국의 조선업을 세계 1위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로부터 14년 후. 한국 조선업이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 밀려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말뫼를 찾았다. 코펜하겐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바다 위에 놓인 외레순 대교를 건너 불과 30분 만에 도착한 말뫼는 대형 조선소가 있었던 도시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고 밝은 분위기를 풍겼다. 크레인이 놓여 있던 선박 건조장은 호화 요트가 정박해 있는 마리나로 변했다. 옛 조선소 터에는 의학, 바이오, 정보기술(IT) 분야 첨단기술 기업들의 유럽 본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말뫼는 1986년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은 후 실업률이 22%까지 치솟았다. 1990∼95년 조선소에서 해고당한 실업자는 모두 2만8000여 명. 거리는 실업자로 넘쳐났고 범죄가 들끓었다. 스테판 뮈클레르 말뫼 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자와 만나 “당시 크레인을 팔지 말고 역사박물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1994년부터 2013년까지 19년 동안 말뫼 시장을 지냈던 일마르 레팔루 전 시장(72)은 단호했다. 레팔루 전 시장은 “가슴 아팠지만 내가 직접 매각을 결정했다”며 “쓰지 않는 크레인을 보존하는 비용만 연 500만 크로나(약 7억1700만 원)가 들어가는 데다 ‘뉴 말뫼’에 적합한 심벌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크레인’에서 ‘터닝 토르소’로 바뀐 랜드마크

말뫼 시는 1986년 조선소가 문을 닫은 후 ‘사브-스카니아’사의 상용자동차 조립 공장을 유치했지만 이 회사도 미국 GM에 팔리면서 1990년에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말뫼 시민들은 기업인, 노조, 주지사, 시장, 대학교수 등이 참여한 위원회를 만들어 ‘10∼2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도시의 장기적인 산업은 무엇일까’를 놓고 ‘끝장 토론’을 벌였다. 결론은 20세기형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손떼고 신재생에너지, IT, 바이오 같은 첨단산업을 신(新)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레팔루 전 시장은 중앙정부에서 2억5000만 크로나(약 359억 원)를 지원받아 2002년 조선소 터를 매입해 100% 자체 생산한 청정 에너지로 운영되는 친환경 뉴타운을 개발했다. 2005년에는 건물 몸통이 꽈배기처럼 90도 비틀리는 54층(190m) 높이의 ‘터닝 토르소(Turning Torso)’가 말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들어섰다.

2000년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과 바다를 건너 연결된 길이 7.8km의 외레순 대교가 개통됐다. 이 다리 덕분에 말뫼는 코펜하겐과 광역 지하철 생활권이 됐다. 다리가 놓이자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말뫼에 거주하면서 코펜하겐으로 출퇴근하려는 덴마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조선소가 문을 닫고 23만 명까지 줄었던 말뫼의 인구는 현재 34만여 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말뫼와 코펜하겐 중심으로 형성된 식품산업단지인 ‘외레순 클러스터’는 양국 국내총생산(GDP)의 11%가 나오는 젖줄로 발전했다. 세계적인 바이오·제약 산업 클러스터인 ‘메디콘 밸리’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식품과 바이오산업이 발달한 코펜하겐과 이어지는 외레순 대교가 개통되고 말뫼 안팎에 국제적인 수준의 연구력을 갖춘 대학들이 문을 열면서 말뫼에서도 식품과 바이오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코쿰스 조선소 본사가 있던 빨간 벽돌 건물은 500여 개의 IT 스타트업 기업이 입주해 있는 ‘미디어 에볼루션 시티’로 변신했다. 조선소 터에는 말뫼 대학과 세계해사대학(WMU)이 들어섰다.

○ 스웨덴, 기업에 정부 보조 철폐

“말뫼가 1974년 세계 최대 크레인을 도입한 후 12년 만에 조선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조선업의 떠오르는 강자였던 한국도 2002년 ‘말뫼의 눈물’을 매입해 간 뒤 14년 만에 조선업이 위기에 봉착한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스웨덴 기업혁신부의 라르스 에리크 프레드릭손 공공기업 투자디렉터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스웨덴의 조선업 위기가 ‘닮은꼴’이라고 분석했다. 코쿰스 조선소가 문을 닫기까지 스웨덴 정부가 10여 년에 걸쳐 340억 크로나(약 4조8773억 원)라는 엄청난 자금을 지원했으나 결국 조선업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는 “위기에 빠진 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생명을 잠깐 연장시키는 것일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며 “당시 교훈을 계기로 스웨덴 정부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에 절대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밝혔다.

말뫼=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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