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학교 교칙은 자유분방? 美학교 실제 규정 들여다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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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학교 교칙은 자유분방? 美학교 실제 규정 들여다보니…
초등생 A가 친구 B에게 “너는 뚱뚱하고 멍청해” 놀리며 따돌렸다면
한국… 학칙상 별문제 안 돼 담임이 알아서 처리
미국… 가해자는 의무 상담 받고 공식 사과해야

《 초등학생이 친구에게 “너는 뚱뚱하고 멍청해”라고 놀리면 어떻게 될까? 국내 대부분 학교의 학칙에 따르면 이런 행동은 징계를 받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담임교사가 알아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몽고메리초등학교 학생이 같은 행동을 했다면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고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교칙이 정한 수많은 금지 행동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미국 초중고교의 학칙을 취재진이 검토했더니 자유분방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한국보다 훨씬 엄격했다. 또 학생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과 위반 시 징계내용을 학생 지도 차원에서 세세하게 정해 놓은 곳이 많았다. 》
○ 한눈에 볼 수 있게 항목별로 정리

미국 워싱턴 주 선셋초등학교의 책읽기 수업 모습. 미국 학교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과 이를 위반했을 때의 징계방법을 교칙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미국 워싱턴 주 선셋초등학교의 책읽기 수업 모습. 미국 학교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과 이를 위반했을 때의 징계방법을 교칙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동아일보DB
고교 1학년이던 3년 전 미국 유타 주로 건너간 배해인 양(19)은 “한국에서는 교칙의 중요성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미국 학교에서는 대부분 정확하고 엄격한 교칙에 따라 생활지도를 한다”고 말했다.

배 양이 다니는 이스트고교(공립)에서는 학기 초에 안내서를 통해 학칙을 알려준다. 또 교실을 포함한 학교 곳곳에 학생이 지켜야 할 규칙을 붙여 놓았다.

마이애미 주 노스앤도버의 브룩스고교(사립)의 경우 70쪽 분량의 학교생활 안내책자를 통해 학생이 지켜야 할 점을 설명하고 있다. 복장 술 담배 약물 및 차별과 괴롭힘, 집단 따돌림(왕따),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대한 처리까지 다룬다. 집단 따돌림은 △다른 학생에게 육체적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히거나 △다른 학생의 소유물에 피해를 주거나 △교실에서 적대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사이버 왕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간단하게 언급한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A고의 학생생활지도규정은 모두 12쪽이지만 실제로 학생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2쪽에 그쳤다.

내용도 예절, 준법, 수업, 근태 등의 큰 분류를 활용해 징계 대상 행위를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징계 대상 역시 △예의가 바르지 못하거나 △수업 준비 및 태도가 불량하거나 △무단가출하여 사회 물의를 야기한 학생 등 추상적이다. 서울과 경기에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이 따돌림과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할 뿐, 다른 학생에게 해서는 안 될 폭언이나 폭행 등 책임에 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 행동별 처벌방법 엄격히 적용

경기 호원고 학생들의 자치법정 장면. 학칙을 어겨 벌점이 누적된 학생을 대상으로 재판을 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국내 초중고교는 학생지도와 관련된 내용을 세세하게 정하지 않고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한다. 동아일보DB
경기 호원고 학생들의 자치법정 장면. 학칙을 어겨 벌점이 누적된 학생을 대상으로 재판을 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국내 초중고교는 학생지도와 관련된 내용을 세세하게 정하지 않고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한다. 동아일보DB
미국 학칙은 문제 행동에 대해 적합한 처벌방법을 자세하게 명시한 점도 특징이다. 몽고메리초등학교가 있는 곳의 지역교육청이 만든 지침은 학생의 비행 정도에 따라 학교가 선택할 수 있는 징계의 범위와 유형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욕설과 험담’, ‘학교 또는 교실에서 학습을 방해하는 행동’ 등의 분류에 따라 각기 △학생 상담 △공식적인 사과(말 또는 글) △휴식시간 제한 △부모 또는 보호자 면담 조치가 가능하다. 또 위반 정도를 1∼3단계로 나눠 △하루 종일 휴식 중지 △격리 △행동 제약 또는 반성문 쓰기 △수업 참여 금지 등의 추가 제재를 허용한다.

반면, 한국은 처벌 상황과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다. 서울 B초교의 경우 징계와 관련된 교칙은 ‘학교장은 교육상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학생에 대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징계를 할 수 있다’며 △학교 내의 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이수 △출석정지(1회 10일 이내, 연간 30일 이내) 등을 열거하는 식이다. 여기에다 학생인권조례는 아무리 교육적인 목적이라도 직접체벌은 물론이고 간접체벌까지 금지하고 있어서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통제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수단이 학교와 교사에게는 없는 셈이다.

○ 메신저에서 다른 친구 욕했다가 퇴학까지

학칙을 실제로 엄격하게 적용하는 점도 한국과 미국이 다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기독교 재단 소속 학교들은 정학이나 퇴학 조치가 가능한 행위로 △싸움 △교사에 대한 의도적인 반항 △인종 차별적인 발언 △욕설과 비속어 사용을 들었다.

실제로 아시아 출신의 고교 2학년 학생이 메신저로 채팅을 하다가 다른 친구들을 거칠게 욕한 사실이 드러나 퇴학을 당한 일이 있다.

전문가들은 학생인권조례 시행에 따른 학칙 개정 논란과 관련해 한국도 보다 상세한 내용을 만들고, 실제 학생지도에 반영하면 마찰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조금주 상명대 교육학과 교수는 “미국은 오래전부터 학교 스스로 규칙이나 규정을 만들고 이를 구체화했다. 한국은 교칙이 너무 획일화돼 있고 추상적인 경향이 있어 정교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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