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정훈]한반도의 4월은 잔인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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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4월’은 그 자체로 긴장을 준다. 그달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 탓이다. 훈련 때마다 북한은 도발로 대응해 왔다. 미군은 핵항모 전단과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전략자산을 괌과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고 있고, 북한 수뇌부 타격이 가능한 신형 무인기 ‘그레이 이글’까지 군산기지로 곧 날아간다. 북한이 지난해처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도 발사하는 날엔 미국의 군사 공격마저 우려된다.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짐 리시 공화당 상원의원은 18일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 작전은 없다. 무력이 사용되면 문명사상 가장 재앙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는 곧 그렇게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코피 터뜨리기가 아니라 ‘쌍코피 작전’이 준비됐다는 의미다. 상원의원 18명이 6일 트럼프에게 “선제공격 권한이 없다”는 서한을 보낸 것도 백악관의 강경 기류를 감안한 조치다.

‘4월 위기설’은 서울보다 워싱턴이 더 심각하게 본다. 북-미 대화가 시작되면 접촉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도 최근 사석에서 올림픽 이후의 4월을 걱정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훈련을 연기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백악관 기류에 정통한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처럼 군사훈련 연기를 제안하면 트럼프는 한미 동맹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도 언감생심 말을 못 꺼낸다. 북한이 북-미 대화로 훈련 연기 명분을 주기만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군사훈련에 북한이 도발로 대응하지 못할 걸로 보고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은 지금 미국과의 대화에 절박한 상황”이라며 “평창으로 대화의 문을 연 북한이 쉽게 판을 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핵 보유를 선언한 것도 추가 도발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의 ‘자기 보호용’ 선언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번에도 우리 정부에 불만이다. 미국 정부는 뉴욕타임스의 13일자 ‘미국, 북한에 대화의 문을 열다. 문재인 대통령의 승리’ 기사에 대해 우리 측에 항의했다는 얘기도 워싱턴 정가에 돌아다닌다.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 2명을 인용한 기사였는데, 대화 정국으로 유도한 공을 왜 문 대통령이 챙기느냐는 것이다.

평창에서 김여정을 무시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귀국길에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한 것 역시 남북 대화를 ‘트럼프의 작품’으로 만들려는 연장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해석이다. 펜스는 11일 귀국길 기내에서 워싱턴포스트의 외교안보 대기자 조시 로긴과 만났고, 14일에는 정치전문매체로 영향력이 큰 액시오스의 마이크 앨런 편집장과 만나 대화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비핵화가 아니면 의미 없다”고 못을 박고 있다. 공격을 하더라도 중국을 의식해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았다는 명분을 쌓으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대화의 문은 열어뒀지만 정책 방향은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지난주 의회 청문회에서 국가정보국장(DNI)과 중앙정보국(CIA) 태평양사령부 수장들이 한목소리로 “북핵의 목표는 정권 유지가 아니라 한반도 적화통일”이라고 한 것도 비핵화 협상에 회의적인 기류를 반영한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 의회에서 군사 옵션의 명분을 쌓은 셈이다.

트럼프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벼랑 끝에 서 있다. 지금 김정은에게 밀려 의회를 빼앗기면 너무 빨리 레임덕 대통령이 된다. 트럼프는 얼마든지 한반도의 4월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군사훈련으로 한미 동맹을 지키면서, 김정은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지금 상황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아야 할 정도로 급박하다.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
#한미 연합 군사훈련#4월 위기설#조셉 윤 대북정책특별대표#트럼프 행정부#북미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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