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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이 웃겨요? 혁명적 연구도 처음엔 다 비웃음 받았죠”

기사입력 2012-05-28 03:00:00 기사수정 2012-05-28 05:04:42

괴짜상 ‘이그노벨상’ 창시자 마크 에이브러햄스 씨 인터뷰

24일 경기 과천시 코오롱 본사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마크 에이브러햄스 씨. 과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제가 생각하는 제일 큰 업적요? ‘이그노벨상’을 만든 거죠. 저는 유머 과학잡지 ‘기발한 과학연구(AIR)’를 통해 수십 년 동안 황당한 이야기를 수집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잡지인데요, 이 잡지를 어떻게 배포하는지 보여드릴게요.”

연사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잡지 여러 권을 객석으로 던졌다. 청중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단에 선 사람은 1991년 ‘엽기노벨상’ ‘괴짜노벨상’이라 불리는 이그노벨상을 제정해 21년간 운영해 온 마크 에이브러햄스 씨.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24일 경기 과천시 코오롱 본사에서 이 회사 직원을 상대로 강연한 뒤 동아일보 기자를 만났다.

○ “만사에 호기심 갖는 건 인간의 기본”

“우리는 어떤 연구가 최고냐 최악이냐, 가치가 있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정말 획기적인 연구는 처음 나왔을 때에는 가치를 알 수 없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단체사진을 찍을 때 눈 감는 사람이 한 명도 안 나오게 하려면 몇 장을 찍어야 할까, 딱따구리가 두통을 앓지 않는 이유는 뭘까…. 듣기만 해도 헛웃음이 나올 것 같은 이런 연구는 실제로 이그노벨상을 받았다. 도대체 기준이 뭘까. 일부러 황당한 것만 고르는 걸까. 의외로 에이브러햄스 씨의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그는 “첫째로 사람을 웃게 하는 것인지 둘째로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인지를 본다”고 설명했다. 그중에는 뒷날 정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업적으로 판명 날 연구도 있을 수 있다. 에이브러햄스 씨는 “지금까지 과학사를 살펴보면 혁명적인 발명이 다 처음에는 황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상시 브래지어를 얼굴 마스크로 활용할 수 있게 한 ‘브래지어 방독면’으로 2009년 이그노벨상 공중보건상을 받은 우크라이나 출신 과학자 옐레나 보드나르 박사의 아이디어는 나중에 특허를 받았다. 2000년 자석을 이용해 개구리를 공중 부양시키는 연구로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는 2010년 그래핀 소재 연구로 진짜 노벨 물리학상을 탔다.

그는 수상자에 대해 “처음부터 사람을 웃겨보겠다고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며 “연구는 학자의 기본이며 세상만사에 호기심을 갖고 연구하는 게 인간사의 기본”이라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이그노벨상을 만든 목적도 누구를 웃음거리로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자들이 공들여 연구한 멋지고 기발한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고 묻히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 “창의성 짜낸다고 나오지 않는다”

에이브러햄스 씨는 창의성에 대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자’고 해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고심하다 보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대 이그노벨상 수상자 목록을 보면 분명히 조롱의 의미가 담긴 상도 있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1994년 심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선정 사유는 ‘싱가포르 시민이 껌을 씹거나 침을 뱉을 때마다 부정적 강화요법을 적용하는 연구를 30년이나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그에게 기자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에이브러햄스 씨는 “물론 그가 이그노벨상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세상에는 분류하거나 설명하기 힘든 사람이 있는데 김정은이 바로 그렇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3대 세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처럼 들렸다.

에이브러햄스 씨의 코오롱 강연을 성사시킨 인물은 권혁호 FnC코오롱 부장. 그는 향기를 내뿜는 캡슐이 내장돼 문지르면 상큼한 냄새가 나는 ‘향기 나는 정장’을 개발해 한국인 최초로 1999년 이그노벨상 환경보호상을 받았다. 고기 냄새가 옷에 밸 걱정이 없고 향수 사용이 자연스러운 서양인들에게 신선하고 획기적으로 비쳤던 것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요청하자 에이브러햄스 씨는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일을 찾으라”고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 ::

미국의 과학유머잡지 ‘기발한 연구연보’가 물리, 문학, 평화 등 10가지 분야에서 획기적이고 이색적인 연구업적을 이뤄낸 사람들을 선정해 주는 상. 이그(ig)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라는 뜻이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기념 상패를 주지만 상금은 없다. 시상식은 매년 미국 하버드대의 샌더스홀에서 열리며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이 시상을 돕는다. 올해는 9월 20일 22회 시상식을 앞두고 있다.

과천=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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