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우산 벗어난 ‘유럽 독자군대’ 깃발 올려… 영국도 동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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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美 우선주의’에 위기감… 마크롱, 작년 9월 제안 EII
英佛獨 등 9개국 참여 첫 회의… 군사작전-자연재해 대응 논의
佛, 英과 군사협력도 강화

유럽군 창설의 모태로 평가되는 유럽 개입 이니셔티브(EII·European Intervention Initiative) 첫 회의가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EII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소르본대 연설에서 처음 제안한 것을 계기로 올해 6월 출범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벨기에 덴마크 에스토니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9개국이 참여했고 핀란드가 곧 합류할 예정이다. 이번 첫 회의는 마침 전날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북부 제1차 세계대전 격전지 방문에서 “진짜 유럽 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EII는 실제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조직 창설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지난해 12월 출범한 유럽 안보·국방협력체제(PESCO)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이 예상된다.

PESCO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주도하는 체제로 EU 회원국 25개국이 참가한다. 직접적인 작전 수행보다는 각종 무기 체계를 일원화하고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준비 성격이 강하다. 유럽 국가들이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이외에 독자적인 국방 협력 체제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러시아를 위협으로 여기는 동유럽 국가들이 다수 포함돼 행동이 느리다. 나토에 대한 국방 의존도가 높은 만큼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EII는 전통적인 군사작전, 자연재해, 전쟁 지역 탈출 등에 투입되는 실질적인 유럽 신속 대응군 개념이 강하다. 이날 첫 회의에선 현재 유럽에 닥친 새로운 위기와 위협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 진행됐고 향후 로드맵도 논의했다.

자연재해에 대한 공동 대응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카리브해를 강타한 허리케인 ‘어마’ 때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가 함께 복구 작업을 벌이는 데 사흘이 걸렸지만 EII가 출범하면 하루면 복구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EII에 동참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대서양 동맹을 맺고 있는 영국은 그동안 나토 외에 유럽 독자적인 국방 체제에 반대해 왔지만 이번엔 유럽 군사 협력에 적극 합류하고 있다.

핵보유국이자 유럽 국방력 1, 2위를 다투는 영국과 프랑스는 양국 간 독자적인 공동 군사협력 체제도 강화하고 있다. 영-프 두 정상은 올해 1월 버크셔에서 만나 랭커스터 하우스 조약(2010년 체결한 양국 국방협력 조약)을 실질화하기로 합의했다. 2020년까지 공동 군대 1만 명을 창설해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협력 범위를 정보기관까지로 확대할 계획이다.

안보를 나토에 의존해 온 유럽에서 다양한 독자 국방협력 체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 잣대를 내세워 동맹도 서슴없이 비판하면서 유럽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6일 실시된 미 중간선거 이후에도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방향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 러시아 심지어 미국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1980년대 유럽이 미사일 위기를 겪은 후 마련된 주요 군축 협정을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며 “누가 주요 피해자가 될 것인가? 바로 유럽이다. 유럽의 평화가 위태롭다”고 위기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군 창설’까지는 갈 길이 멀다. 프랑스 야당인 공화당의 로랑 보키에 대표는 7일 “군대라는 건 중앙 집권적인 권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유럽군 제안은 ‘판타지(환상)’에 불과하다”며 “그보다 프랑스와 독일이 유럽을 지키기 위해 공동 군대를 두는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나토#유럽 독자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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