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뒤쫓는 베이징-상하이… 치열해진 ‘유니콘 목장의 결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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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글로벌 테크허브 전쟁]美 경제패권 위협하는 中 ‘벤처 굴기’

《무역전쟁에 돌입한 미국과 중국이 첨단기술 기업을 길러내는 글로벌 ‘테크 허브’ 경쟁에서도 미래 경제 패권을 쥐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는 실리콘밸리를 앞세워 주도권을 잡은 선발 주자 미국을 베이징과 상하이를 앞세운 중국이 맹렬한 기세로 추격하고 있다. IT 선진국이며 혁신성장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운 한국은 후발 주자인 중국과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만년 유망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역전쟁 상대 미국을 무서운 기세로 쫓아가고 있는 중국 테크 허브의 성장을 살펴봤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전체 매출의 10%에 불과한 해외 매출 비중을 2025년까지 미국 실리콘밸리 기술기업들과 비슷한 수준인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공교롭게도 중국 정부가 10대 첨단 전략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제시한 ‘중국제조 2025’의 목표 시점과 겹친다.

여기에다 중국 최대 ‘테크허브’인 베이징과 상하이가 키워낸 토종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신생기업)들까지 속속 가세하면서 미국과 세계를 향해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미래 경제의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테크허브’들이 벌이는 ‘유니콘 목장의 결투’가 막을 올린 것이다.

○ 베이징과 상하이, 실리콘밸리 맹추격

글로벌 기술시장 분석회사인 CB인사이트가 18일 세계 15개국 25개 ‘테크허브’를 분석한 결과, 올 5월 현재 유니콘을 가장 많이 배출한 테크허브는 미국 실리콘밸리(57개)로 조사됐다. 이어 베이징(29개), 뉴욕(13개), 상하이(11개) 순으로 나타났다.

‘유니콘 목장’이라고 할 수 있는 글로벌 테크허브의 경쟁이 미국과 중국의 2강 구도로 굳어지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히는 양상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기술기업들은 한때 검색엔진부터 전자상거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실리콘밸리의 상품을 단순히 베끼던 카피캣에서 개척자로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형별로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뉴욕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영국 런던, 이스라엘 텔아비브 등 3개국 6개 지역이 가장 성공한 ‘유력 허브’로 분류됐다. 최근 급성장한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인도 벵갈루루 뉴델리,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은 ‘고성장 허브’로 분석됐다. 서울은 스웨덴 스톡홀름, 호주 시드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8개국 8개 지역과 함께 ‘유망주 허브’로 평가됐다.

○ 중국, 정부 주도 자본과 인재 집중 투자

실리콘밸리는 민간 주도로 성장했지만 중국 테크허브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급성장한 게 다른 점이다.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인은 3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미국 대학 외국인 학생 중 약 3분의 1,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분야 대졸자의 25%가 중국인이다. 이들이 귀국해 베이징과 상하이의 ‘테크허브’에서 벤처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자본력도 실리콘밸리와 격차를 좁히고 있다. 2012년 이후 누적 투자금액은 실리콘밸리가 1400억 달러로 가장 많았다. 이어 베이징(720억 달러), 뉴욕(360억 달러), 상하이(230억 달러) 순이었다. 이달 1일 중국 국유기업인 자오상(招商)그룹은 약 1000억 위안(약 16조8000억 원) 규모의 벤처캐피털 펀드를 조성해 주로 중국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약 100조 원 규모인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를 벤치마킹한 ‘중국판 소프트뱅크’를 선언한 것이다.

실탄을 충분히 장전한 중국 테크허브는 창업 생태계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기업 인수합병이나 기업공개를 통한 ‘엑시트’도 실리콘밸리처럼 활발하다. 물류기술 회사인 징둥닷컴이 기업공개로 260억 달러를 끌어모으는 등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2012년 이후 1억 달러 이상의 엑시트가 50여 건에 이른다. CB인사이트는 “베이징과 상하이가 실리콘밸리와 경쟁을 하기 위해 자금 조달의 덩치를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 ‘차이나 머니’에 백악관도 긴장

해외 자원개발 중심이던 중국의 해외직접투자(FDI)는 ‘중국제조 2025’가 발표된 2015년 이후 첨단기술 쪽으로 방향을 급격히 틀었다. 2014년 6월 중국 공업화신식화부가 집적회로 산업 육성을 발표하자 90일 후 전직 정부 관리가 참여한 391억 달러 규모의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2013년 214개이던 중국 정부 주도의 벤처캐피털 펀드는 지난해 말 1166개로 늘었다.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부서까지 두고 있는 중국투자공사만 해도 한국 외환보유액의 2배가 넘는 8138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조시 러너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런 시도는 중국이 첨단기술을 훔쳐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미국 강경파들을 더 불편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미국이 중국 기업의 미국 첨단기술 투자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차이나 머니’의 힘을 의식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해킹이나 미국 현지 기업 인수 등으로 첨단기술을 빼가고 있다고 의심한다.

백악관은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분야 목표 목록을 밝혔는데, 최근 중국 투자의 많은 부분이 이 목록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실리콘밸리#중국#유니콘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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