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울음에도 꿈쩍않던 트럼프, “아내-딸 반대에…” 아동 격리 철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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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입국자 부모-자녀 공동수용’ 행정명령 서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하게 밀어붙이던 ‘불법 입국자 부모-자녀 격리 수용 지침’을 철회했다. 밀입국하다 적발된 부모는 기소해 처벌하고 동행한 미성년 자녀는 창고나 텐트촌에 격리 수용하는 무관용 정책을 포기한 것이다. 급격한 방향 선회의 배경에는 슬로베니아 출신 이민자인 부인 멜라니아 여사의 반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백악관에서 밀입국한 부모와 아이가 수용시설에서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이 행정명령은 불법 입국자라도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인 동시에 미국이 매우 강력하고 명확한 국경을 갖고 있음을 확인한 내용”이라며 “가족 구성원들이 떨어져 있는 모습이 좋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이로써 밀입국한 부모와 미성년 자녀를 격리 수용하는 정책은 시행 한 달여 만에 백지화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초 이 정책을 시행하면서 미성년자 1995명이 부모와 떨어져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시행 과정에서 불법 입국자의 어린 자녀들이 부모와 떨어지며 애통하게 울부짖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 정치권뿐 아니라 종교계와 해외 각국 정상들로부터 ‘비인도적인 밀입국자 가족 격리 수용 정책을 철회하라’는 거센 압박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일 “어린아이를 부모와 격리해 가둬 놓는 비인도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이민자 관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며 확산됐던 ‘노벨 평화상을 트럼프에게!’ 여론도 밀입국자 대응 정책 논란으로 힘을 잃었다. 노르웨이 노벨 평화상 위원회 일원인 토르비에른 야글란 유럽평의회 사무총장은 20일 언론 인터뷰에서 “국경에서 어린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떼어놓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도덕적 지도자가 아니라는 신호”라고 말했다.

국내외의 이런 전방위적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유엔인권이사회(UNHRC) 탈퇴를 선언하며 ‘이민 정책 불변’ 메시지를 고수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태도를 바꾼 데는 멜라니아 여사와 장녀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의 막후 압력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익명의 백악관 관료를 인용해 “멜라니아 여사는 밀입국자 가족 격리 수용 정책에 대해 처음부터 ‘어린아이를 부모와 떨어뜨리는 건 옳지 않다. 다른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전했다. 딸 이방카와 그의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도 “국경에서 밀입국자 가족을 분리 수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혼란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내 아내와 딸 이방카가 그것(밀입국자 가족 격리 수용 철회)에 관해 매우 확고한 생각을 가졌음을 알게 됐다”며 “나도 가족 구성원이 떨어져 지내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이방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서명 직후 트위터에 “국경에서의 가족 별거를 끝내는 중요한 조치를 한 데 대해 대통령께 감사한다”고 적었다.

멜라니아 여사는 슬로베니아에서 모델로 활동하던 1996년 방문 비자로 미국에 왔다. 2001년 영주권을 받고 2005년 트럼프와 결혼한 뒤 이듬해 미국으로 귀화했다. 최근 멜라니아 여사의 부모가 영주권을 받아 미국에 체류하며 시민권을 취득하는 과정을 밟고 있음이 알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해 온 ‘연쇄 이민’(이민자의 가족이 잇따라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 특혜 사례라는 논란이 일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격리 수용 지침 철회와는 별개로 ‘밀입국자를 추방하는 대신 기소해 구금하는’ 무관용 정책의 나머지 부분은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 전에 백악관에서 공화당 의원들과 만나 “우리는 여전히 계속 강하게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국은 우리가 원하지 않고 용인하지 않는 사람들, 범죄자들이 들끓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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