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하며 스포츠 칼럼 연재하던 男, 알고 보니…21세 여대생?

  • 동아닷컴
  • 입력 2017년 11월 15일 16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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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스포츠 칼럼을 연재했던 라이언 슐츠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성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남성이었다. 그는 온라인에서 여성 야구 팬들을 꼬드겨 노출 사진을 받아낸 다음 집착과 협박도 일삼았다. 그러나 이 여성 중에서 실제 그를 만나봤다거나, 그의 진짜 사생활에 대해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알지 못 했다.

최근 미국 뉴욕 포스트와 인터넷매체 데드스핀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21세 여자 대학생 ‘베카 슐츠’는 지난해까지 유부남 ‘라이언 슐츠’로 스포츠 칼럼을 써 왔다.

사연은 이렇다.

베카는 8년 전 13세이던 때 ‘나도 스포츠에 관해 전문적인 글을 쓸 수 있겠다’며 스포츠 칼럼니스트를 꿈꿨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글을 쓴다고 해도, 아무도 13세 소녀가 쓴 스포츠 칼럼에 관심을 가져줄 리 없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베카는 “내가 ‘전형적인 남성’이 돼야 사람들이 내가 쓴 글에 주목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라이언 슐츠’가 되기를 선택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베카는 ‘라이언 슐츠’라는 남성의 이름으로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든 뒤 야구와 관련해 쓴 글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의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팬인 10대 소녀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 했다. 그는 메이저리그 매체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 야구 정보사이트 ‘비욘드 더 박스 스코어’ 등에 화이트 삭스에 관한 칼럼을 무료로 제공했다.

베카가 라이언이라는 남성으로 가장해 본격적으로 여성들과 교류하기 시작한 때는 2010년이었다. 이때 베카는 알렉스라는 여성을 만났다. 두 사람은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통해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가까워졌다. 알렉스는 베카에게 신체의 일부를 노출한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알렉스는 베카와 헤어질 때까지 그의 정체를 몰랐다. 통화를 하면서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의 오빠도 변성기가 늦게 왔다며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갔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곧 시큰둥해졌다. 베카는 “라이언 슐츠의 여동생”이라며 페이스북으로 알렉스에게 친구 신청을 보냈고, 알렉스가 이를 거절하자 화가 났다. 두 사람의 만남은 3번이나 틀어졌다. 베카는 알렉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게 됐으며 곧 “블레어라는 여성을 만나고 있다”고 밝혔다. 알렉스는 “그러면 그 여성과 사귀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났다. 베카는 곧 “블레어라는 금발의 여성과 결혼을 했다”고 트위터에 전했다.

얼마 후 베카는 자신을 지원해주는 블레어라는 든든한 아내가 있고, 귀여운 자녀 두 명이 있는 20대 유부남이 됐다고 속였다. 남성 사진은 생판 남의 사진을, 아이들의 사진은 자신의 친척 동생 사진을 도용했다. 그는 그 뒤에도 온라인을 통해 여성들과 만났고, 이들에게 폭언을 했다. 트위터에 종종 여성 혐오 발언도 올렸다. ‘사라’라는 여성을 협박해 노출 사진을 받아내기도 했다. 사라가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하자 그는 지속해서 메시지를 보냈고, 차단하자 새 계정을 만들어 끊임없이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를 보냈다.

‘라이언 슐츠’의 정체가 들통 나게 된 발단은 그가 올린 트위터 글이었다. 그가 올렸던 글이 ‘여성 혐오’라며 거센 비난을 받자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다. 그러나 일은 커졌다. 라이언에게 당했던 몇몇 여성들은 그가 칼럼을 연재하는 웹사이트에 자신들이 받았던 정신적 학대와 그의 여성혐오 발언을 폭로해 더 이상 그의 칼럼을 싣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들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사생활을 털어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 여성들은 그의 아내 블레어와 아이들도 자신들처럼 정신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지는 않을지 염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블레어라는 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라이언의 페이스북 어디에서도 아내와 아이들과 관련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라이언이 받았다는 학위도 가짜였다. 이 가운데 자신의 여동생이라던 ‘베카 슐츠’의 페이스북을 살펴보니 라이언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이때 에린이라는 여성이 그가 실은 ‘베카 슐츠’라는 21세 여대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에린은 이 사실을 트위터에 폭로했다.

베카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복구해 사과했다. 그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 없다. 사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이 없다. 반발이 있을 거라는 걸 알지만 내 실제 가족과 친구들이 피해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곧 다시 트위터 계정을 삭제했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속이는 동안 심한 우울증과 불안감을 느꼈다며 “(정체가 들켜서)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언론을 통해 전했다. 몇 번이나 ‘라이언 슐츠’를 그만두려 했지만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고 한다.

베카는 “난 어렸고 (스포츠 칼럼니스트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그래서 난 내가 생각하는 ‘남성’의 이미지대로 행동했다. 일은 심각해지기 시작했고, 난 내가 쳐놓은 덫에서 나올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라이언’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정말로 (스포츠 칼럼을 연재하는 데에)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나는 정말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예슬 동아닷컴 기자 ys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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