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파리지앵에게 한국 그리고 일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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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작년 7월, 파리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일주일 만에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에서 테러가 터졌다. 사망자만 86명에 이르는 대형 사고였다. 니스로 향하면서 프랑스 한국대사관에 전화했다. 워낙 유명한 관광지여서 한국인 피해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사관 영사와 직원도 파리에서 급하게 현지로 내려가고 있었다. 파리에서 니스까지는 900km가 넘는 먼 거리. 남부에는 영사관이 없어 태권도를 가르치는 교민을 영사 협력원으로 두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일본은 니스와 가까운 남부 마르세유에 있는 영사관 직원이 급파됐다. 일본은 파리 외에도 세 곳에 영사관이 더 있다. 외교 역량에서 차이가 있구나, 프랑스에서 일본과의 격차를 실감한 건 그때부터였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 좌우 1km 사이로 한국문화원과 일본문화원이 있다. 그러나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다. 에펠탑 바로 옆 센강변에 위치한 일본문화원은 지나가다가 눈길이 갈 정도로 세련된 유리 건물로 지어져 있다. 에펠탑 건너편 두 블록 떨어진 골목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은 쉽게 찾기가 힘들다.

일본문화원의 면적은 7500m², 한국문화원(750m²)의 10배다. 더 놀라운 건 프랑스가 파리에서 손꼽히는 이 노른자 땅을 1982년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거다.

두 개의 거대한 공연장에서 일본 전통 공연이 계속되는 일본문화원과 달리 1979년에 지어진 한국문화원에는 공연장이나 전시장이 없어 복도에서 전시회를 열어왔다. 10년 숙원 사업으로 내년에 문화원을 옮긴다. 부지를 매입하는 데 650억 원의 예산이 들었다.

프랑스가 무상으로 문화원 부지를 제공할 정도로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진 건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1800년대 중후반부터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일본의 채색목판화 우키요에를 비롯해 도자기, 차, 부채 등 자포니즘이 파리와 유럽을 강타했다.

파리에서 40분 거리 지베르니에 위치한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집에는 온통 일본 그림이 걸려 있다. 파리 외곽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빈센트 반 고흐도 일본 마니아였다.

우리가 일본에 전통문화를 전수했다는 자부심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사는 건 고달프다. 프랑스어가 서툰 유학생이나 주재원들은 프랑스 은행을 이용하기가 힘들어 유일한 한국 은행 지점인 KEB하나은행 파리 지점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수지가 안 맞아 하나은행이 내년에 소매업 철수를 검토하면서 이들의 고민이 크다.

반면 거의 모든 일본 주재원은 프랑스 현지 은행을 이용한다. 주요 프랑스 은행에 일본어가 가능한 직원이나 통역원이 있어 프랑스어를 몰라도 별 불편함이 없다. 지하철에 일본어 안내 방송이 나오고 일본어 통역원이 있는 종합병원도 있다.

파리에 파견된 많은 일본 외교관이나 주재원들은 자녀들을 본국과 같은 교육과정을 진행하는 일본 학교에 보낸다. 꼭 많은 돈을 들여 국제학교로 보내야 할 만큼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다. 반면 파리에 한국어로 교육하는 한국 학교는 한 곳도 없다. 있다고 한들 그리로 보낼지도 의문이다.

프랑스인들에게 150년 전부터 일본은 동양에서 가장 앞선 1등 국가다. 문화,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인정하기 싫지만 일본 조상들이 이뤄낸 거다.

이제 프랑스인들도 한국 하면 삼성과 싸이, 그리고 김치 정도는 떠올린다. 산업화와 한류,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가 함께 이뤄낸 노력의 결과다. 그래도 우리 후손들이 조국을 자랑스러워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150년 후 세계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로 기억될 것인가.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니스 테러#한국문화원#일본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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