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권력 중심부에서 밀려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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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클린턴 대통령(오른쪽)과 친한 사이였지만 그 이너서클에는 끼지 못했던 로버트 라이시 노동장관. 미국 폴리티코 사이트 캡처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클린턴 대통령(오른쪽)과 친한 사이였지만 그 이너서클에는 끼지 못했던 로버트 라이시 노동장관. 미국 폴리티코 사이트 캡처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워싱턴 특파원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워싱턴 특파원
‘Inside the Beltway but Out of the Loop’(벨트웨이 안에, 그러나 루프 밖에)

미국에서 발간된 책 제목입니다. 저는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지 볼까요. 우선 ‘Beltway’부터.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어본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Beltway’는 원래 워싱턴을 둥그렇게 둘러싼 고속도로 이름입니다. ‘Inside the Beltway’라고 하면 워싱턴을 말합니다. 지명이 아니라 워싱턴 정치, 정치인을 가리킵니다. 미국 유명 신문에는 ‘Inside the Beltway’라는 제목의 칼럼난도 있습니다.

핵심은 ‘out of the loop’입니다. ‘loop’는 둥그런 형태의 고리를 말합니다. 그냥 동그라미라고 보면 됩니다. 워싱턴 정치에서 ‘loop’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너서클’ ‘권력의 핵심부’를 의미합니다. 정치세계에서 모든 정치인이 같은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최고 리더의 주변에 모이는 정치인이 실세입니다. 따라서 ‘out of the loop’는 ‘실세 그룹, 즉 이너서클의 밖에 있다’ ‘이너서클에 끼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위 제목을 해석한다면 ‘워싱턴 정치판 안에는 있지만 이너서클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뜻입니다. 로버트 라이시 전 미 노동장관이 쓴 자서전 제목입니다. 라이시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노동의 권리를 옹호하는 다양한 정책을 내놔 주목 받았던 ‘스타 정치인’입니다. 정치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명성은 쌓았지만 정작 이너서클에는 들어가지 못했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제목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도 핵심 세력에서 밀려난 정치인이 많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입니다. 국무장관 정도면 대통령의 이너서클 안에 있을 법도 한데 정작 틸러슨은 취임 1년 만에 ‘out of the loop’ 신세가 됐습니다. 틸러슨이 나온 기사를 검색해 보니 10개 중 8개꼴로 ‘out of the loop’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지난해 10월 틸러슨이 아시아를 순방하면서 대북 대화의 필요성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날린 트윗 한마디는 ‘시간 낭비하지 마라(He is wasting his time)’였습니다. 틸러슨이 얼마나 권력의 핵심에서 멀어져 있는지 잘 보여줍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이너서클에게 그런 트윗을 날릴 리 없습니다. 아마 그때 트럼프 대통령은 이너서클 멤버들과 함께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제한적 대북 선제공격)’ 시나리오를 짜고 있지 않았을까요.

‘out of the loop’는 미국인 일반 대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진 사람은 정보가 없습니다. 이너서클 안에 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 말이죠. ‘I′m out of the loop’라고 하면 ‘나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나는 정보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너서클에서 밀려나면 정보도 없고, 파워도 없습니다. 왜 모두들 필사적으로 ‘측근’이 되려는지 알 만합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워싱턴 특파원
#beltway#inside the beltway#out of the loop#도널드 트럼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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