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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의 오비추어리] 가죽 공방을 명품 브랜드로 키운 다섯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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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종의 오비추어리] 가죽 공방을 명품 브랜드로 키운 다섯 딸

이유종기자 입력 2017-06-28 14:23수정 2017-06-2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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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 펜디. 사진출처 : 카를라펜디재단 웹사이트
이탈리아의 가죽 가게를 명품 브랜드로 키우며 ‘패션의 전설’로 불렸던 패션 브랜드 ‘펜디’의 경영인 카를라 펜디가 2017년 6월 19일 로마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그는 몇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뜬 뒤 지병이 악화됐고 최근 폐 합병증을 겪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펜디는 전 세계 200곳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간 매출액은 약 10억 유로(약 1조3000억 원) 정도다.
펜디는 1937년 7월 로마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전통의 이탈리아 장인 에두아르도 펜디의 다섯 딸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918년부터 로마의 중심가인 비아 델 플레비치토(Via del Plebiscito)에 가죽, 모피 공방을 운영했다.

비아 델 플레비치토는 로마 귀족들이 오가는 로마의 중심가. 에두아르도는 초창기 상류층을 겨냥한 가죽, 모피 제품을 제작했다. 명성이 쌓이면서 1930년대부터 사업을 확장하며 다양한 제품을 내놓았다. 특히 1938년 고급 로만 가죽을 소재로 정교하게 수작업을 거친 셀러리아(Selleria) 컬렉션이 인기를 끌었다. 셀러리아 백은 부드러운 가죽 표면에 내구성이 가죽을 전통 바느질 방식으로 만들었다.

가족 공방을 운영하던 아버지 에도아르도 사망하자 다섯 딸은 1946년 가업을 이어받았다. 딸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했다. 첫째 파올라는 모피, 둘째 안나는 가죽을 담당했다. 셋째 프랑카는 고객서비스, 넷째 카를라 사업관리, 막내 아이다는 영업을 맡았다. 다섯 딸은 “현대 여성은 과거와 달리 집이 아니라 직장에서 일한다. 패션도 여기에 상응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1964년 자체 매장을 처음으로 열었다. 인재도 영입했다. 펜디는 1965년 독일 출신의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를 영입해 창의적인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당시 모피는 틀에 박힐 정도로 디자인 비슷했고 무거웠으며 딱딱했다. 라거펠트는 모피에 구멍을 뚫는 등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고 가벼운 패션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펜디의 유명한 ‘더블 F’ 로고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라거펠트의 디자인과 기술이 인정을 받으며 펜디는 전통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에는 부드러운 가죽과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 다양한 프린팅과 색상으로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했다. 1977년부터는 기성복 시장에도 진출해 큰 성공을 거뒀다.

1997년 둘째 안나의 딸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실비아 벤츄리니는 ‘펜디 바게트백’을 만들었다. 바게트백은 팔 밑에 끼고 다닐 수 있는 작은 가방으로 펜디는 다양하고 독특한 소재로 600가지 이상의 버전을 만들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등장인물들이 바게트백을 들고 나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던 펜디는 2001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에 매각됐다. 펜디 가족들은 10%의 지분만 유지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LVMH는 펜디의 매장을 크게 확장하며 브랜드의 입지를 강화했다.


카를라 펜디는 회사를 매각한 뒤에도 회장직을 맡아 펜디의 얼굴 역할을 하며 ‘패션의 전설’로 불렸다.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문화 행사 후원 등 사회적 공헌도 이어갔다. 그는 2007년 카를라 펜디 재단을 설립해 연극, 오페라, 연주회, 음악원 등을 후원했다. 로마의 대표적인 명소인 트레비 분수의 재단장에도 거액을 쾌척한 문화예술인이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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