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서동일]자유를 위해 자유를 금지한다? 부르카 금지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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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거리 곳곳에서 피켓이 들썩인다.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 전통복인 ‘부르카’ ‘니깝’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1일부터 시행되자 이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니깝은 눈을 제외한 온몸을, 부르카는 눈 부위까지 망사로 덮어 온몸을 가리는 무슬림 전통 옷이다.

주최 측은 시위가 거듭될수록 참석자가 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달 뒤에도 피켓이 거리에 남아 있을까. 이 시위가 몇 달씩 계속 이어지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새로운 것들(news)을 찾는 미디어부터 이들을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의 무관심은 대중의 무관심으로 이어져 시위 역시 서서히 동력을 잃어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무슬림 여성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집 현관문 앞에서 고민에 빠질 게 분명하다. 지금 하려는 외출이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입어온 의복을 포기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덴마크 정부가 정한 벌금 약 160달러를 낼 만큼 가치가 있는 외출인가. 단속에 여러 번 걸려 ‘상습범’이 될수록 외출의 경제 비용은 늘어나고 고민도 깊어진다.

유럽 국가들은 부르카를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으로 본다. 무슬림 여성도 자유롭게 옷을 선택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덴마크에서 법이 통과될 때도 “무슬림 전통 의복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덴마크의 국가적 가치에 반한다”는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법이 무슬림 여성을 집 안에 고립시키는 역효과를 내고 있다면 이 법은 폭력으로부터 여성을 구하는 법이 맞는 것일까.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부르카 금지법을 갖고 있는 국가에서는 법 시행 뒤 무슬림 여성뿐 아니라 이슬람 종교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이 더욱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른바 ‘베일 공격(Veil Attack)’이다.

2013년 프랑스에서는 한 무슬림 여성이 길거리에서 남성들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들은 “베일을 당장 벗으라”며 여성의 옷을 찢고 폭행했다. 임신 4개월이던 여성은 아이를 유산했다. 프랑스는 2011년 4월 부르카 금지법을 시행했다. 이 밖에 유럽 내에서는 쇼핑센터 같은 공공장소에서 무슬림 여성을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우리는 너희를 받을 생각이 없다”고 소리치는 일도 늘었다. 부르카 금지법이 일부 사람들에게 무슬림들은 언어·신체적으로 공격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심어준 셈이다.

부르카 금지법이 시행된 뒤 무슬림 여성들의 삶이 행복해졌는지도 짚어봐야 할 일이다.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은 “유럽 정부의 종교적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다”고 주장한다.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구해주겠다며 법을 만들었는데 이들은 도리어 법이 자신들을 옥죄고 있다고 말한다.

부르카 금지법이 공공의 안전, 즉 테러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한 법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무슬림 전통 의상과 테러’ 사이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을 리 없다. 무슬림이라고 해서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유럽 국가들은 가짜 수염이나 헬멧, 얼굴을 가리는 장식품 등도 함께 금지했다. 그러자 “레고 가게 직원이 (얼굴을 가린) 닌자 캐릭터 옷을 입고 있다”는 신고에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웃음이 나올 만한 일이다.

결국 부르카 금지법은 유럽 내 소수 종교, 특히 이슬람교도에게 가해지는 유럽 국가들의 횡포에 가깝다. 이슬람의 성월인 라마단 기간 무슬림은 모두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거나, 이슬람교도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 지역에서 저질러진 범죄는 형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유럽 국가 곳곳에서 실제로 진행 중이다.

국제앰네스티의 한 인사는 덴마크 부르카 금지법을 두고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 법의 의도가 여성의 권리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 결과는 비참한 실패다. 이 법은 어떤 옷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여성을 범죄자로 만든다. 덴마크가 법을 통해 지켜내겠다고 주장하는 ‘자유’를 놀림감으로 만드는 법이다.”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dong@donga.com
#덴마크#부르카 금지법#니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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