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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난민들에 따뜻한 손 내미는 4만5000명의 ‘하얀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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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난민들에 따뜻한 손 내미는 4만5000명의 ‘하얀 천사들’

임보미 기자 입력 2018-11-24 03:00수정 2018-11-24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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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난민 쉼터 ‘시티즌스 플랫폼’ 르포
시티즌스 플랫폼 창립자 메흐디 카수 씨가 센터 내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 공간. 난민들은 큰 짐을 이곳 창고에 보관하다가 보금자리를 마련해 센터를 떠날 때 짐을 되찾아 간다. 브뤼셀=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벨기에 브뤼셀 북역에서 트램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시티즌스 플랫폼’ 센터는 매일 오후 7시부터 저마다의 사연으로 고향을 떠나온 이들 300여 명을 맞는다. 난민 지위를 신청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거나 난민 지위를 얻어 새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대접받는다. 다음 날 오전 11시 체크아웃이 간단한 규칙이다. 자의든 타의든 새 인생을 위해 타국에 온 낯선 이들에게는 고단함을 잠시나마 덜어주는 환대다.

화려하진 않지만 호스텔 정도의 구색을 갖춘 이곳은 ‘막시밀리앙 공원’에서 시작된 시민연대의 산물이다. 시리아 내전의 여파로 2015년 브뤼셀에는 역대 최고인 4만 명의 난민이 몰렸다. 외교부에 하루에 많게는 500여 명의 난민이 몰렸지만 수용 가능 인원은 50∼60명 수준이었다. 난민 행렬은 결국 건물 밖 막시밀리앙 공원까지 이어졌다. 난민들이 공원에서 잠을 청하자 브뤼셀 시민들은 음식, 텐트, 옷가지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생면부지의 이들에게 빈 침실을 내주기도 했다.

3년 전 생일을 맞아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공원 쪽으로 자동차 핸들을 틀면서 메흐디 카수 씨(35)의 삶도 완전히 바뀌었다.

“공원에 난민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처음 들러봤는데 충격을 받았어요. 세 살짜리 제 아들 또래 아이들이 맨땅에 비닐봉지 하나 깔고 자고 있었어요. 21세기 브뤼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싶었죠. 최소한 저 애들이라도 텐트에서 재워야겠다고 생각해 텐트를 샀어요.”

카수 씨는 ‘시티즌스 플랫폼’을 만들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활용해 시민들과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텐트 150개를 모은 것부터 시작해 필요한 물품 기부, 자원봉사자 모집도 모두 페이스북으로 했다. 시티즌스 플랫폼 봉사자들은 막시밀리앙 공원에 올 때면 난민들이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하얀색 재킷을 입었고, 이들은 ‘하얀 천사들’로 불렸다.

시티즌스 플랫폼 창립자 메흐디 카수 씨(오른쪽)와 센터 직원 무스타시르 씨가 오후 7시부터 센터에 입장할 난민들에게 배포할 쿠폰을 준비하고 있다. 브뤼셀=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브뤼셀 삼성전자에서 키 어카운트 매니저(주요 거래처 관리자)로 커리어를 쌓고 있었던 카수 씨는 1년 넘게 휴직하다 2017년 6월 사표를 냈다.

“지구상 6000만 난민 중에 우리가 지금 센터에서 돌보는 난민은 하루에 800명도 안 돼요. 브뤼셀은 국제사회에서 꽤 높은 지위를 가진 도시인데 이마저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이 하고 있죠. 난민을 마주하는 게 그저 새 친구를 만들 기회 정도로 별게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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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스 플랫폼 센터는 올 6월부터 브뤼셀시를 설득해 얻어낸 빈 건물로 이사를 와 하룻밤에 약 3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9일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카수 씨가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1층 야외 공간에 있던 샤워부스였다. 세면시설이 없는 건물에서 센터 오픈을 준비하며 그는 샤워부스 설치비 2만4000유로(약 3000만 원)를 모았다. 페이스북에 모금 취지를 설명하고 3시간마다 모금 상황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는데 3시간이 안 돼 다 모였다. 주방설비 역시 벨기에 예술가가 기획한 기금 모금 행사로 마련했다. 한때는 직원 한 명이 가스버너 하나로 200인분 음식을 만들었다.

시티즌스 플랫폼은 시민 4만5000명의 크고 작은 참여로 돌아간다. 이날도 센터에는 30여 명의 봉사자가 입실 등록, 침대시트 전달, 요리, 급식, 상담 등 각자의 자리에서 바삐 움직였다. 그중 크리스토프 길모 씨(50)도 그간 남는 방에 난민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다 이날 처음 아내, 아이들과 함께 센터 봉사에 나섰다. 그는 “처음에는 공원에 있는 난민들을 재워주겠다는 다른 집에 태워다주는 일만 했는데 어느 날 봉사자가 착각했는지 잠자리가 필요한 에티오피아 소년 셋을 우리에게 보냈다. 그렇게 갑자기 방을 내주게 됐다”고 말했다.

여고생 레이러 더 비터 양(16) 역시 집에서 혼자 40분간 기차를 타고 센터를 찾아와 능숙하게 저녁식사를 받은 이들의 쿠폰에 체크 표시를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걸 보고 여름방학 때부터 이곳에 왔다는 그녀는 “첫날부터 정말 재밌었고 팀원들한테도 많이 배웠다. 개학을 해서 방학 때처럼 자주는 못 오지만 계속 오게 된다”고 했다.

지금은 난민들 중 하루 평균 250명이 이 센터에서, 약 250명은 일반 가정집에서, 나머지 80명 정도는 벨기에 곳곳에 얻은 건물에 마련한 소규모 시설에서 지낸다. 그중에는 국경을 넘어오는 사이 각종 성범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위한 ‘시스터스 하우스’도 있다. 시티즌스 플랫폼은 난민의 법적, 사회적 필요 절차 안내와 의료, 심리치료 등을 제공하고 빠른 적응을 돕기 위한 각종 언어교실도 운영한다.

센터에 입장해 등록을 마친 난민들은 “봉주르” “헬로” “앗살라무 알라이쿰” 등 다양한 언어의 인사를 건네는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침대와 베개 시 트와 수건, 샤워젤을 받아간다(왼쪽 사진). 이 건물에는 올 6월 입주했으며 총 300명의 난민에게 하룻밤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한다. 브뤼셀=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시티즌스 플랫폼의 체계적인 환대를 보며 올여름 제주도를 달군 ‘예멘 난민’ 논란이 스쳤다. 한국은 유엔난민협약의 오랜 가입국이지만 관념 속 난민과 현실 속 난민은 명백히 달랐다. 막상 300여 명의 난민이 한국을 찾아오자 극단적 혐오 반응이 쏟아졌다. 난민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던 인기배우 정우성(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은 십자포화를 맞았다. 이런 상황을 전하자 카수 씨는 “사람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감정은 사랑과 두려움”이라고 했다.

“둘은 정반대의 감정 같지만 두려움은 종종 사랑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우리 민박 가정들도 열에 아홉이 ‘처음에는 두려웠다’고 고백해요. 난민들을 차에 태워 집에 데리고 가면서도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우리 애들 해코지하고 날 죽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요(웃음). 하지만 결과는 우리조차도 기대하지 못했던 사랑이었어요.”

유럽은 그나마 이방인을 보는 게 익숙한 대륙이다. 이민 역사가 더 길기 때문이다. 그는 “아마도 지금 한국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나라가 난민들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게 가장 클 것이다. 그런데 그건 정치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사람 자체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쏟아지는 난민 문제들은 그간의 잘못된 이민 정책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프랑스의 경우 게토(격리지역)를 만들어 난민을 자신들의 사회에서 차단시켜 놓고 뭔가 저절로 되기만을 바라다 긴 세월 오해만 쌓았죠.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잘못된 이민 정책이 빚어낸 결과에 대응하는 것뿐이에요. 당장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이고 좌우를 가릴 일도 아닙니다.”

브뤼셀=임보미 기자 bom@donga.com

※ 이 기사는 주한 유럽연합(EU)대표부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시티즌스 플랫폼#막시밀리앙 공원#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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