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한 ‘곤 통치’…기업에서도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0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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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힘든 ‘카를로스 곤 닛산 회장의 비리’ 뒤엔 1인 카리스마 경영의 짙은 그림자
자기 연봉 스스로 정하고, 회사 금고도 개인 지갑처럼 사용한 듯
회사 측 “오랜 1인 권력이 부정을 불렀다. 회사를 사물화(私物化)한 악질적 비리”

카를로스 곤 회장. 사진 아사히 신문 제공
카를로스 곤 회장. 사진 아사히 신문 제공
“카를로스 곤 회장은 카리스마 경영인인가, 폭군인가?”

19일 오후 10시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하마(橫浜) 시 닛산(日産)자동차 본사.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회장이 체포된 지 2시간 만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곤 회장의 정체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닛산자동차 사장은 한숨을 쉰 후 이렇게 얘기했다.

“취임 초기에는 매우 큰 개혁을 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후는 공(功)과 과(過)가 다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경영 권한이 너무 집중됐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친 ‘곤 통치’의 잘못된 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변절한 ‘곤 통치’… ‘1인 카리스마 전문경영’이 화 불러

곤 회장은 망해가던 닛산자동차를 1년 만에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수완을 발휘하며 자동차 업계 ‘스타 경영인’으로 불렸다. ‘V자 회복’의 성공 신화, 과감한 비용 절감 및 구조조정으로 ‘코스트 커터’라는 수식어를 얻은 그는 1999년 닛산 최고운영자(COO)로 취임한 후 1년 만에 사장, 이듬해 최고경영자(CEO)에 잇달아 취임했고 다시 2년 뒤에는 회장이 되는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이후 르노의 회장 겸 CEO도 함께 맡아 르노-닛산 연합을 성장시켰고 2년 전에는 미쓰비시자동차를 인수, 그룹을 세계 2위 규모의 자동차 회사로 키워냈다. 그러나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용의자’의 신분으로 전락했다. 곤 회장은 내년 3월 르노와 닛산 두 회사의 자본제휴 20년을 기념해 파리에서 성대한 축하행사를 계획했었다. 이런 갑작스런 추락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현재 도쿄지검 특수부와 닛산자동차 측에 따르면 곤 회장의 혐의는 2011~2015년 5년 간 실제 받은 보수보다 약 50억 엔(약 499억 5800만 원) 줄여 보고한 혐의(금융상품거래법 위반)와 사적인 목적으로 닛산의 투자 자금을 쓰고, 회사의 경비도 부정사용한 혐의 등 3가지 인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NHK는 곤 회장이 브라질, 레바논 등 세계 4개국에 집을 마련하면서 구입비용이나 건축비용 등에 회사 돈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수부는 곤 회장을 둘러싼 불투명한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경제의 조력자로 알고 있던 곤 회장의 비리에 일본 열도는 ‘곤 통치에 배신당했다’며 충격에 휩싸였다. 마이니치신문은 “희대의 카리스마 경영자였지만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이 부정을 불렀다”며 “회사를 사물화(私物化)하는 악질적인 부정”이라고 비판했다.

곤 회장에게 과도한 권한 집중을 허용한 이유에 대해 사이카와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곤 회장이 2005년 르노와 닛산의 CEO를 겸하게 됐고 그것(곤 회장으로의 권한 집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며 “곤 회장이 닛산 주식의 44%를 보유한 르노의 톱이라는 점 때문에 제어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CEO의 부정’을 회사가 즉각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회사가 불투명한 것도 지적의 대상이 됐다. 닛산 측은 회사의 투명성이 낮은 것을 인정하며 지금의 책임자들이 반성해야할 점이라고 밝혔다. 닛산 측은 이번 일을 계기로 1인 집중 체제를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기업 법무 전문 변호사의 인터뷰를 통해 “닛산의 사외이사가 임원 보수를 결정하는 ‘보수 위원회’ 같은 것이 없고 보수액을 곤 회장이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라며 “이번 사건은 대표자에게 일임하는 많은 일본 기업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일본 내 상장기업에서 보수 위원회를 도입한 회사는 25%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콘 회장과 일본 경영진 간 갈등 의혹도

사진 아사히 신문 제공
사진 아사히 신문 제공
닛산은 지난해 비전문가 및 자격이 없는 종업원이 출고된 차량을 검사한 사실이 드러나 차량 100만 대 이상을 리콜한 바 있다. 또 출고 전 배기가스와 연비 측정 결과를 5년간 조작한 사실도 드러나 대국민 사과도 했다. 이런 가운데 ‘CEO의 비리’까지 겹쳐 심각한 신뢰도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NHK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닛산 직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배신감에 사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한 직원은 “땅에 떨어진 기업 이미지를 만회하려고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마당에 총수의 비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2만1000명의 구조조정 등 ‘닛산 리바이벌 플랜’을 진행하며 ‘사원의 목’을 잘라 온 사람이 비리의 온상이었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도쿄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내에서 최대한 일본어를 쓰며 ‘믿어 주세요’라고 호소한 그의 모습에 직원들은 좋은 감정을 가져왔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곤 회장의 비리는 닛산 내부 보고에 의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사법 거래’의 형태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사법 거래는 타인의 범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수사기관에 협조하면 자신의 형벌이 감면되는 제도로 올해 6월부터 일본에도 도입됐다. 이로 인해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이번 사건이 일본 측 경영진과 곤 회장 사이의 갈등으로 촉발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 됐다. 또 닛산이 특수부의 수사에 협조적인 이유가 “이번 사건은 ‘회사 차원의 비리가 아닌, 곤 회장 개인의 범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사이카와 사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수부는 사건의 본질이 곤 회장의 자금 유용에 있다며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고 배임이나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밝혀내는 방향으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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