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생물권보전지역, 남북 함께 신청땐 내년 지정 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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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의장 이병현 대사 단독 인터뷰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회의장 단상에 서 있는 이병현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의장. 그는 1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유네스코가 
회원국 간 갈등이 아닌, 화합의 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정치는 유엔 안보리에 맡기고 유네스코는 본연의 문화 교육 과학 
분야 협력이 이뤄지도록 사무총장과 함께 유네스코 개혁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병현 의장 제공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회의장 단상에 서 있는 이병현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의장. 그는 1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유네스코가 회원국 간 갈등이 아닌, 화합의 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정치는 유엔 안보리에 맡기고 유네스코는 본연의 문화 교육 과학 분야 협력이 이뤄지도록 사무총장과 함께 유네스코 개혁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병현 의장 제공
“남북이 함께 비무장지대(DMZ)를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신청하면 이르면 내년에라도 선정이 가능합니다.”

지난해 12월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의장에 당선된 이병현 유네스코 주재 한국대사는 14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 의장실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2012년 한국이 추진했다가 무산된 DMZ 생물권보전지역 선정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견제하는 국회의장 역할을 맡는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의장은 의제 선정과 의사 진행에 영향을 미친다. 이 대사는 주유네스코 한국대사도 겸하고 있다.

한국은 2012년 남한 구역만 단독으로 생물권보전지역 선정을 추진했지만 당시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대사는 “남북 정상이 판문점 회담을 하면서 DMZ가 전 세계의 관심을 끈 만큼 남북이 함께 추진할 경우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될 경우 DMZ의 관광 유치와 난개발 방지에 효과적이며 DMZ를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DMZ 남측 최북단 민간인 마을인 한국 대성동 마을과 DMZ 북측 최남단 기정동 마을도 문화유산 등재 가치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사는 이달 초 유네스코 내 세계유산위원회(WHC) 위원국 대사 8명과 함께 DMZ 투어를 진행했다. 위원들은 “생태계 보전이 잘돼 있어 당장 자연유산으로 등록해도 손색이 없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이 대사는 “교육 문화 과학 등 비정치적인 분야를 다루는 유네스코는 특히 북한과 협력할 것이 많으며 김용일 주유네스코 북한대사와 상당한 신뢰도 쌓여 있다”며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협의 시일이 넉넉하진 않지만 올해 11월 아프리카 모리셔스에서 열리는 무형유산위원회에 남북이 각각 의제로 올릴 계획인 씨름도 공동으로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리랑과 김치의 경우 한국이 각각 2012년과 2013년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고 2년 뒤 북한도 유산으로 등재시켰다.

매년 말 유네스코 본부에서는 아시아 회원국들이 자국의 전통 음식을 소개하는 축제가 열린다. 이 대사는 “북한이 늘 김치를 준비해 오기 때문에 한국은 불고기를 준비해 간다”며 “지난해 말 이리나 보코바 당시 사무총장이 한국 부스에 와서 김치를 찾아 북한 부스로 안내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올해 3월 유네스코 본부 앞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해 10월 유네스코에서 보류 결정이 난 위안부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대사는 “지난해 유네스코 사무국이 회원국별로 정치적 갈등을 빚고 있는 문화유산 안건 8개를 선정해 기록물 취소를 추진했는데 위안부 기록물도 그 안에 포함돼 있었다”며 “하지만 위안부 기록물은 정치적 안건이 아니라 전시 여성 인권의 보편적 가치 문제라고 설득해 8개 의제 중 유일하게 취소가 아니라 보류 판정이 났다. 아직 살아 있는 의제”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신임 유네스코 사무총장도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용일 북한대사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한국의 위안부 기록물 등재에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탈퇴 선언과 연이은 이스라엘 탈퇴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대사는 집행이사회 의장에 취임하면서 “유네스코가 국제 정치 분쟁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비정치적 업무에 집중하자”며 ‘탈정치’를 주요 어젠다로 내걸었다.

그 첫 성과가 지난달 유네스코 집행위에서 표결 없이 합의로 통과한 중동 결의안이다. 그동안에는 집행위 회의마다 회원국 수가 많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결의안을 올려 표결로 채택하고, 이스라엘은 결의안을 무시하는 행태가 반복돼 왔다.

이 대사는 “처음으로 이번 집행위에서 민감한 내용을 빼고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이스라엘 미국이 사전 조율을 거쳐 합의로 결의안을 채택했다”며 “여전히 갈등이 크지만 이스라엘과 아랍의 간극을 좁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최강국인 미국이 유네스코에 남아 지도자 역할을 했으면 하는 회원국들의 바람이 크며 이스라엘의 경우는 탈퇴 의사를 번복할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고 기대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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