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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복지 늪에 빠진 일본, 근로의욕-경쟁심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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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복지 늪에 빠진 일본, 근로의욕-경쟁심 사라졌다”

동아일보입력 2012-06-06 03:00수정 2012-06-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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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일본식 쇠망의 길 가는 것 아닌지”
日 대표적 정책브레인 데라시마 씨 인터뷰
“일본은 왜곡된 복지로 나라가 급격히 피폐해지고 있다. 한국도 조심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될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정책 브레인으로 현 노다 요시히코 정권의 대외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데라시마 지쓰로(寺島實郞·65·사진)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복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한국 정치권에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그는 “왜곡된 복지정책이 일본 국민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있다”며 “한국도 천천히 일본식 쇠망의 길을 가는 게 아닌지 걱정하면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도쿄(東京) 시내 ‘데라시마 문고’(개인 도서관)에서 첫 대면 인터뷰를 갖고 이후 닷새 동안 서면 보충질의를 통해 내용을 보완한 이번 인터뷰는 5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일본 민주당 정권이 집권 2년여 만에 벼랑 끝에 선 이유를 진단하기 위해 마련됐다. 민주당은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등 정권 교체의 원동력이 됐던 핵심 복지공약을 철회하거나 축소한 가운데 구멍 난 재정을 메우기 위한 소비세 인상안을 둘러싸고 당이 분열되기 직전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도 ‘퍼주기식 복지정책’이라는 점에서 일본 민주당의 위기는 세계 공통의 위기이기도 하다.

정책 중심 못잡고 CM송만 흘려 집권
―민주당 정권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동서 냉전시대에는 일본 정치에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확실한 테마가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난 뒤에는 새로운 정책의 축을 찾지 못한 채 집권만을 노린 합종연횡의 시대가 전개됐다. 2009년 민주당이 집권했지만 나라를 위한 큰 정책을 내세운 게 아니라 표를 얻으려면 복지를 내세워야 할 것 같고,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를 강조해야 할 것 같아 내세운 공약이 먹힌 것이다. 정책의 메인요리 없이 디저트와 샐러드만으로 모양새만 추구하는, CM송만 흘리는 정당이었던 것이다. 이런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번에 똑똑히 봤다. 그래서 실망했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번을 계기로 일본이 다음에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명확해졌다.”

분배 왜곡… 일해서 세금 내면 손해
―한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복지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처럼 이미 성공했다는 자신감이 지나치면 없는 사람을 위해 돈을 더 뿌려야 한다는 생각이 나오게 마련인데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이른바 분배의 정당성 문제다. 일본에서 연간 3조7000억 엔의 생활보호비가 나간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3명 가족 기준으로 생활보호대상자 한 가구당 연간 지원금이 생활보호비 200만 엔에 주택 임차보조금, 무상의료지원금 등을 합쳐 300만 엔(약 4530만 원)에 이른다. 반면 일본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은 연 수입 200만 엔 이하다. 열심히 일해 세금 내고 나라를 지탱하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급격하게 나라가 피폐해진다. 한국도 조심하지 않으면 일본처럼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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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 몰랐나
―복지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인가.

“복지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복지를 하려면 각오가 필요하고 잘 알고 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유럽처럼 국민 모두가 아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고 함께 기른다는 원칙에 동의하고 이를 위한 부담을 각오하고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하지만 세계 산업·경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람을 느끼는 사회를 지향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것저것 듣기 좋은 말만 섞어서 공약으로 내세우면 결국 파탄을 면치 못한다. 민주당은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 발상으로 아동수당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결국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야 하지만 국민은 이를 몰랐기 때문에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는 것이다. 최저보장연금도 마찬가지다.”

젊을 땐 지원금, 늙으면 연금으로 살겠다?
―나라가 피폐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일본 젊은층은 ‘젊을 때는 일 안 하고 생활보호비로, 늙으면 최저연금으로 대충대충 살겠다’는 생각을 실제로 갖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젊은층의 성공 욕구와 경쟁심이 사라진 나라가 됐다. 지금 젊은층이 제일 싫어하는 게 경쟁이다. 모두가 A급이 아니라 B급 정도면 좋다고 생각한다. 젊은층 가운데 앞으로 크게 성장하겠다는 사람을 만날 수 없다. 한국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1990년대 미국 뉴욕에서 근무할 때 한국의 상사 직원들이 밤에 야채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깜짝 놀라 물어보니 아이 교육비 때문이라고 하더라. 요즘은 그런 한국인도 없고, 일본인보다 명품 쇼핑에 열심인 것 같다. 한국도 천천히 일본식 쇠망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포퓰리즘 이후는 ‘웃는 얼굴의 파시즘’
―포퓰리즘이 독재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듣기 좋은 말을 해 표를 얻는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되면 마지막 단계에 이른 포퓰리즘은 국민의 자학적 분위기에 편승해 극단적인 슬로건을 내세우게 된다.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이나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가 바로 그런 예다. 이시하라 지사는 오만불손한 태도로 대중을 경멸하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대중은 박수 치며 좋아한다. 하시모토 시장은 ‘너희들 생각이 틀렸다’고 하는데 대중은 이를 솔직하다고 받아들인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민주주의가 등장하는 셈이다. 가장 민주적이라던 바이마르공화국에서 히틀러가 90%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등극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포퓰리즘의 다음에 있는 것은 포퓰리즘을 부정하는 ‘웃는 얼굴의 파시즘’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안으로 움츠러들고 있다는 걱정이 많다.

“대학 총장으로서 나도 고민 중인 주제다. 우치무키(內向·내향화)가 지속되면 한국이나 중국에 질 수 없다는 수준의 싸구려 민족주의가 생기게 마련이어서 걱정이다. 다만 요즘 젊은층은 한국이나 중국에 대한 시각이 수평적이다. 일본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없다. 이건 가능성이라고 본다. 젊은이들이 시야를 넓혀 보다 윤택한 세계관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 데라시마 지쓰로는 ::

일본 와세다대를 졸업한 뒤 미쓰이물산에서 워싱턴 사무소장과 본사 상무를 역임했다. 1970년대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정책 브레인으로 불리며, 민주당과 자민당의 정책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재 다마대 학장(총장)으로 일본총합연구소 이사장, 미쓰이물산 전략연구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데라시마 지쓰로#일본#복지#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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