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잔인한 ‘전쟁 포르노’…폭력수위따라 등급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4일 1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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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하지 않은 화면에는 이라크인 세 명이 서있었다. 아파치헬기에 타고 있던 미군 조종사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저들을 쏴라." '탕, 탕, 탕' 소리를 내며 총알이 발사됐다. "좋아, 다른 사람도 쏘자." 잠시 후, 나머지 한 명은 트럭 뒤에 숨어있다 절뚝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쳤네. 다시 쏘자, 탕, 탕, 탕." 먼지가 가라앉자 세 번째 남자도 죽어있었다.
1만1000km 떨어진 컴퓨터 앞에서는 네이트 씨가 이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쟁마니아인 그는 "어떤 군사 채널보다 이 비디오만한 게 없다"며 "최근까지 관련 사이트에 800여 개의 동영상을 올렸다"고 말했다.

지난 달 초 이라크에서 작전 중이던 미군이 로이터 기자 2명을 살해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그 후 전투기나 폭격기가 적을 죽이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들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뉴스위크가 최신호를 통해 보도했다. 갓워포른닷컴(GotWarPorn.com)과 유튜브 등에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는 이런 동영상들은 '전쟁 포르노(war porn)'라고 불린다. 이 표현은 2004년 프랑스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가 처음 사용했다.

'전쟁 포르노'는 미군들이 포르노영상을 구하기 위해 전쟁장면을 담은 영상과 맞바꾸면서 생겨났다.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하던 크리스 윌슨 씨는 카드 결제로 이라크의 군인들에게 섹스 비디오를 팔다 적발되자 돈 대신 전쟁 동영상을 받기 시작했다. 2004년 후반부터 전쟁이 험악해지자 영상들도 잔인해지기 시작했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윌슨 씨는 2005년까지 미군 3000여 명을 회원으로 확보했다. 정부는 윌슨을 기소했지만 동영상 출처를 밝히지 못해 처벌하지 못했다.

정확히 집계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전쟁 포르노'들은 수천 개에 달하며 재생횟수도 수백만 번에 이른다. 전장에서 군인들이 직접 촬영해오거나 무인정찰기에 달린 카메라로 촬영한 원 영상들은 온라인에 게시되기까지 여러 차례 편집을 거친다. 자극적인 장면들만 이어붙이거나 배경음악을 삽입하는 식이다.

폭력 수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기도 한다. 수류탄으로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부터 스너프 필름(Snuff Film·강간 살인 장면을 그대로 찍은 영화)을 연상케 하는 잔혹한 영상까지 다양하다.
'전쟁에 뛰어든 로봇(Wired for War)'의 저자 피터 싱어는 "아이폰이나 데스크탑 모니터를 통해 이런 영상을 보는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닌 단순한 오락추구용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뉴스위크도 "이런 비디오에는 적들이나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시민들만 등장하고 미군은 나오지 않는다"며 "자기주장만 하는 지하드의 선동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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