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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벤 크라머르 “편하게 숨쉬면 최고가 못된다… 나만 지켜보라”

유재영 기자 입력 2018-01-02 03:00수정 2018-03-0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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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에게 꿈을 묻다]<7> 스피드스케이팅 황제 스벤 크라머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

수많은 전 세계의 스포츠 선수 중에 ‘황제’라는 칭호를 받는 선수는 손에 꼽는다. 스벤 크라머르(32·네덜란드)는 세계 ‘빙속 황제’다. 2005년 19세 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당시 세계기록(6분08초78)을 세운 뒤로 장거리 절대 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빙속 세계 최강 네덜란드 대표팀의 중심으로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하는 크라머르는 한층 완숙해진 황제의 위용을 과시한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부터 출전한 크라머르는 3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지난해 말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2017∼2018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3차 대회 때 그를 만나 ‘황제의 꿈’을 들었다.


○ 평창에서 ‘황제표 스케이팅’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겠다


크라머르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때로는 눈을 부릅뜬 표정으로, 때로는 웃으면서 “나만 지켜봐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거만하다 싶을 만큼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는 요즘 평창 올림픽과 관련한 어떤 질문이든 대답할 때 “확신한다(I’m Sure)”를 붙인다. 크라머르는 “그만큼 평창 올림픽을 잘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평창에서의 목표를 물었다. 그랬더니 “목표를 묻지 말고 나의 꿈을 물어봐 달라”고 했다. 그는 “나는 목표를 넘어 꿈을 꾸고 있다. 나는 늘 스케이팅 기술과 스케이팅을 잘할 수 있는 ‘맛’을 연구해왔다. 스케이팅할 때 다리와 온몸을 통해 전해져 오는 느낌이 바로 스케이팅의 ‘맛’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내 스케이팅이 어떤 것인지는 설명하지는 못했다. 평창 올림픽을 통해 내 스케이팅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고 싶다. 그러면서 금메달이란 결실을 따내고 싶다.”

○ 장거리 황제랍시고 안전 레이스는 없다

크라머르는 감정 변화가 심했다. 나쁘게 보면 다혈질에 제멋대로 성격이다. 그만큼 승부욕도 강하다. 이에 대해 크라머르는 “맞다”고 인정하며 “이런 성격 때문에 경쟁에서 이기려고 평범한 스케이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시즌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 2차 대회 남자 5000m에서 우승한 크라머르는 3차 대회 직전 올림픽 오벌 링크의 공기 압력과 얼음 상태를 면밀하게 체크해 그 전과는 다른 레이스 전략을 짰다. 코너링 자세도 몸을 트랙 안쪽으로 더 기울였다.

크라머르는 2007년 11월 월드컵에서 자신의 5000m 최고 기록이자 지금도 올림픽 오벌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6분03초32를 세웠다. 크라머르는 “10년 전 감을 다시 찾고 기록도 깨보려고 모든 변수를 살폈다. 이곳에서 ‘크라머르가 이런 기록밖에 못 내’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 위험을 조금 감수하더라도 공격적인 스케이팅으로 내 기록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크라머르는 3차 대회에서 6분07초04로 우승을 차지했지만 자신의 최고 기록에는 못 미쳤다. 하지만 크라머르는 “아이스크림처럼 잘 미끄러지는 좋은 빙질에서 어떻게 공격적인 스케이팅을 할지를 알았다”며 만족해했다.

○ 깨져버린 황제의 기록…“어차피 편하게 호흡하는 경기는 없다”

크라머르는 지난해 말 다소 복잡한 마음으로 네덜란드 대표 선발전을 치렀다. 월드컵 3차 대회 직후 자신의 기록이자 세계 기록인 6분03초32가 깨진 것이다. 직접 평창 올림픽에서 자신의 세계기록을 깨보겠다던 목표를 수정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지난해 12월 11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 대회 5000m에서 그동안 크라머르에 이어 2위에 머물렀던 캐나다의 테드얀 블루먼이 6분01초86으로 크라머르의 세계기록을 깬 것이다. 블루먼은 10년 만에 크라머르의 기록을 1초46 앞당겼다.

자국 대표 선발전을 대비하느라 4차 대회에 불참했던 크라머르로서는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 하지만 크라머르는 “편하게 숨쉬면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걸 늘 새기고 경기에 나선다”며 다시 세계기록을 찾아오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크라머르는 그동안 경쟁 선수가 자기 기록을 넘어 세계기록을 오래 보유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2007년 3월 3일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5000m에서 6분07초48로 당시 세계기록을 세운 크라머르는 그해 11월 10일 엔리코 파브리스(이탈리아)가 6분07초40으로 기록을 깨자 일주일 만에 6분03초32로 세계기록을 자기 것으로 돌려놨다.

평창 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5000m, 1만 m와 남자 팀추월 경기에 나서는 크라머르는 1만 m에서도 세계기록에 도전한다. 2006년 이후로 크라머르가 세계기록 경신을 독점해왔지만 2015년 11월 역시 블루먼이 12분36초30으로 크라머르의 당시 세계기록(12분41초69)을 깼다.

크라머르는 이번 시즌 첫 대결을 한 월드컵 2차 대회 1만 m에서 12분50초97로 우승하며 일단 블루먼의 기세(12분52초64)를 눌러놓은 상태다.

○ 황제의 힘, 여자 친구

빙속 황제 스벤 크라머르(왼쪽)와 여자친구인 필드하키 선수 나오미 판아스. 사진 출처 스벤 크라머르 인스타그램
크라머르는 요즘 여자 친구의 응원으로 큰 힘을 받고 있다. 2007년부터 교제한 필드하키 선수 나오미 판아스는 네덜란드 대표 선발전에서 크라머르를 열정적으로 응원해 감동시켰다. 크라머르는 “그녀는 경기장에 오기 싫어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관중석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힘을 얻었다”며 고마워했다. 월드컵 3차 대회 당시 크라머르는 기자에게 “게으름을 잊게 하는 사람”이라며 여자 친구가 큰 자극제임을 암시했다.

캘거리=유재영 채널A 기자 elegant@donga.com
 

스벤 크라머르는…

△생년월일: 1986년 4월 23일생(네덜란드 헤이렌베인)
△키, 몸무게: 187cm, 83kg
△가족: 아버지 예프 크라머르와 여동생 브레흐트 크라머르도 스케이트 선수 출신
△취미: 사이클
△올림픽 성적: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 2010년 밴쿠버 올림픽(5000m), 2014년 소치 올림픽 2관왕(5000m, 팀추월)
△세계선수권 성적: 세계종목별선수권 금메달 19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 세계종합선수권 9회 우승
#스벤 크라머르#스피드스케이팅#평창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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