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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 귀순병사 살리기’ 그 일주일간 이야기

이재명기자 입력 2017-11-21 21:22수정 2017-11-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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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충혈 됐고 파란 수술복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환자를 돌보다 짬을 내 식당에 앉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48)은 “언제 집에 다녀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귀순 중 총상을 입은 북한군 오모 씨(25)의 2차 수술을 마친 다음날(16일)이었다. 수술에 방해가 되지 않게 테이프로 칭칭 감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숟가락을 놓고 일어났다. 환자에게 갈 시간이다. 오 씨가 병원에 도착한 뒤부터 의식을 되찾기까지 일주일간 이 교수와 동료들의 전쟁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13일 오후 4시 14분, 이 교수는 “중증외상 환자가 실려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곧장 연두색 항공 군의관 점퍼와 고글을 착용하고 헬기 착륙장으로 뛰어나갔다. 40분 후 미군 항공의무후송팀 ‘더스트오프’의 헬기가 착륙하고, 오 씨가 들 것에 누운 채 내렸다. 평소 더스트오프 헬기를 타고 온 환자를 수없이 치료해온 이 교수는 이 때만 해도 오 씨가 미군인줄 알았다.


오 씨가 수술실에 들어간 것은 오후 5시 23분. 출혈이 심했다. 피로 흥건한 수술실 바닥에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찰박’ 소리가 났다. 혈액형을 검사할 시간도 없이 O형 혈액 4유닛(약 1.5L)을 뜯어 환자의 몸에 넣고 흉부를 열었다. 길이 27㎝ 기생충이 발견된 것도 이때였다. 이 교수가 젓가락으로 기생충을 들어올리자 의료진 사이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소장을 고무호스처럼 두 손으로 눌러 짜냈다. 총탄에 뚫린 구멍 사이로 또 다른 기생충들이 삐져나왔다.

부러진 오른쪽 골반까지 맞추고 첫 수술을 끝낸 것은 오후 11시 5분. 그제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 뒤 오 씨를 외상중환자실로 보냈다. 몸에 박힌 총알을 제거하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는 한 발 후퇴였다. 중증외상 환자는 일단 숨을 붙여놓고 ‘반전’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해적의 총을 맞은 석해균 선장 땐 상처 부위를 덮었다가 열기를 4차례 반복했다. 이틀 후인 15일 오전 9시 40분부터 시작된 오 씨의 2차 수술에서 총알들이 나왔다. 총알이 수술 쟁반에 떨어지며 ‘쨍’ 소리를 냈다. 오 씨는 사흘 후부터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수술방 안에는 삶과 죽음만 있다. 무승부는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여기엔 다른 뜻이 숨어있다. 수술방 바깥은 같은 사안을 놓고도 선악을 달리 말하는 혼란의 세계라는 뜻이다. 우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A 씨의 몸에서 기생충이 발견된 사실을 공개한 것을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 “인격 테러”라거나 “쇼맨십이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을 두고 그를 ‘적폐’로 규정하는 댓글이 올라왔다. 그는 댓글을 보지 않으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할 수 없는 구형 블랙베리 휴대전화를 쓴다.

이 교수는 6년 전엔 정반대로 ‘빨갱이’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석 선장 사건을 계기로 중증외상 치료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2012년 아주대병원을 권역외상센터로 지정하고 헬기 이송 시스템을 구축하는 이른바 ‘석해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아주대병원은 그해 권역외상센터로 지정되지 않았다. 경쟁 병원의 의사들이 “이 교수가 쉽게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두고 쇼를 했다”고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에게 e메일을 돌리며 그를 빨갱이로 지칭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는 요즘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는 압박감을 견디기가 어렵다. 전부 폭로하고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 교수 본인은 눈앞의 환자를 살리는 것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고가 단순한 이과생’인데, 견제하고 음해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왼쪽 눈이 망막혈관 폐쇄와 파열로 실명 직전이 되도록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환자와 동료를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 교수는 아주대 의대 4학년 때 해군 갑판병으로 입대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의사의 길을 포기할 셈이었다. 하지만 배 위에서 ‘어떤 파도라도 헤쳐 나가는 게 뱃사람 정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역 후 학교로 돌아와 외과와 응급의학과를 공부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Any Given Sunday)’ 중 한 장면을 종종 보여준다. 미식축구 감독 역할을 맡은 알 파치노가 마지막 게임을 3분 앞두고 선수들을 모아 “인생은 1인치의 게임이고, 우리는 한 번에 1인치씩 끝까지 가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노력하면 서서히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5년 전 기자와 만나 “언론인이든 의사든 ‘끝장을 본다’는 각오로 달려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일을 언급하니 이 교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때 이후로도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봤어요. 이미 끝을 넘은 것 같아요.”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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