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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정자]기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언론보도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입력 2017-04-28 03:00수정 2017-04-2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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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정유라 신고한 다음 체포장면 ‘특종 보도’ 옳은가
“동물원 코끼리 야생으로 보내야”… NYT는 기사가 보도된 뒤 기자의 청원사실 알려지자 사과
‘취재 시 기자는 중립적 관찰자’… 저널리즘 기준 되새길 필요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덴마크 법원이 정유라의 국내 송환을 결정했다는 뉴스를 보니 올 초 정유라의 체포 과정이 떠올랐다. 한국의 어느 기자가 그녀를 덴마크 경찰에 불법 체류 혐의자로 신고한 후 체포되는 장면을 특종 보도했고, 소속사는 단독 보도임을 내세우며 그 기자를 영웅시하였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과 보도를 하는 것이 동시에 할 수 있는 행위인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었다.

이렇게 적극적인 행동까지는 아니었어도 대통령 탄핵 사태 내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보도 과정에 그대로 드러내는 기자들이 적지 않았다. 초기에 대통령 하야 요구가 촛불 시위대의 구호였을 때 어느 TV 기자는 ‘하야’라는 글자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카메라 앞에서 보도를 했다.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기자들도 있었다. 기자도 평범한 인간이므로 각기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언론 선진국인 서구 사회에서라면 어떻게 할까, 궁금했었다.

탄핵 사태 당시 언론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한 신간서를 보고 그 의문이 풀렸다. 책에는 2015년 6월 28일자 미국 뉴욕타임스에 ‘가장 외로운 코끼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트레이시 툴리스 기자의 사례가 나와 있었다. 툴리스 기자는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9년째 홀로 사육되고 있는 코끼리를 다른 코끼리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썼다.

기사가 나간 다음 날 브롱크스 동물원의 공보책임자가 청원자 명단에 기자의 이름이 있다고 신문사에 통보해 왔다. 기사를 쓴 툴리스는 2개월여 전 문제의 코끼리를 야생으로 보내야 한다는 동물보호단체의 온라인 청원에 서명했던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즉각 “청원에 서명한 행위는 타임스의 저널리즘 기준에 어긋난다”는 사과 글을 실었다. “만약 기자가 청원에 서명한 것을 알았다면 취재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원래 뉴욕타임스의 지침서에는 “취재 시 중립적 관찰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정이 있다. 예를 들면 선거 후보자에게 기부를 하거나, 시위 또는 행진에 참가하거나, 차량에 정치적 주장이 담긴 스티커를 붙이거나, 옷에 배지를 다는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지침서에는 온라인이든 직접이든 청원에 서명하는 것은 안 된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툴리스 기자는 서명이 기준의 위반으로 간주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뉴욕타임스는 결국 기자가 어떤 사안을 책임 있고 공정하게 보도할 수 있으려면 청원에 서명하거나, 시위에 참여하거나 또는 트위터에 글을 올리는 등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이 신문의 취재 지침이 기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중립적 관찰자가 되라는 것이다.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는 하되 그 사건에 직접 개입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온라인 청원서에 클릭하는 행위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기자도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할 때는 그 건에 대해 기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

기자의 중립성을 밑받침하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법은 18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학대나 방치가 의심되는 경우를 본 경우 이를 반드시 주정부에 신고해야 하는 사람들의 직업군을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사에서부터 경찰관, 소방관, 교사, 법원 관계자, 종교 관계자, 어린이보호운동가 등 40종류가 넘는 직군이다. 그런데 이 중에 기자 또는 언론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매우 시사적이다. 기자는 기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 공익에 훨씬 더 부합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만약 외국 어느 나라에서 자국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불법 체류자를 그 나라 경찰에 직접 신고해 체포토록 하고 그것을 보도하려 했다면? 아마 회사 차원에서 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고, 신고한 후라면 그에 관한 기사를 쓰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광풍과도 같았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언론도 선진 언론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으면 좋겠다.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기자 개인의 정치성향#중립적 관찰자#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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