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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길진균]백의종군 논란 데자뷔

길진균 정치부 차장 입력 2017-04-21 03:00수정 2017-04-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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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백의종군 선언 왜 했나. 아쉽거나 후회한 적 없냐”고 물었다. “정권을 만든 사람의 최소한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최근 만난 바른정당 이학재 의원은 그러면서 “후회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모두가 ‘자리’를 기대하던 시기에 새누리당 의원 중 유일하게 “새 정부에서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바른정당 소속이지만 이 의원은 박근혜 대선 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한때 ‘뼈박(뼛속까지 친박근혜)’으로 불린 친박 핵심이었다.

18대 대선이 치러진 2012년 12월 새누리당 안팎에선 친박 핵심들을 겨냥한 백의종군 압박이 거셌다. “측근들이 먼저 기득권을 던지고 박 후보(대통령)의 앞길을 터줘야 한다”는 논리였다. 선대위에서 요직을 맡았던 유정복 직능총괄본부장, 서병수 당무조정본부장, 이주영 후보 특보단장, 이학재 비서실장 등 많은 친박 인사들이 실명으로 거론됐다. 이 중 이 의원만 이를 결행했다.

새삼 5년 전 얘기를 다시 꺼낸 건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백의종군 논쟁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문재인 대선 후보 선대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번 대선은 더 많이 버리는 쪽이 이기는 선거가 될 것”이라며 “측근들이 몸을 던지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민심을 언급하며 던진 화두였다.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자리에 있던 선대위 관계자 가운데 누구도 먼저 나서겠다거나 논의해 보겠다는 말은 없었다.

국민의당도 박지원 대표를 둘러싼 백의종군론 또는 차기 정부 임명직 거부 선언 가능성에 대해 “박 대표에게 생각이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기시감이 들었다. 5년 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 선대위에서는 친노(친노무현) 핵심의 백의종군 논쟁이 벌어졌다.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 전해철 의원, 이호철 전 대통령민정수석 등 이른바 ‘3철’을 포함해 핵심 9명이 선대위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들은 끝내 “임명직에 나서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측근들이 물러나는 게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면 당선자의 가치와 정책을 즉각 현실화할 인재가 필요하고 오랫동안 함께 정치를 해 온 측근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 정국을 지나며 사실상 내전을 치렀다. 이번 대선이 갈라진 대한민국을 치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 후보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지금 함께하시는 분들은 정권교체를 위해 모이신 분들이고, 정권교체까지가 역할이다. 대탕평 대통합의 원칙에 맞는 분이 있다면 누구나 발탁할 수 있다”며 ‘국민통합 대통령’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세간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마디로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다. 패권주의의 외형적 행태는 인사 독식이다. ‘100% 대한민국’을 약속했던 박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수첩 인사’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선 후보의 측근이었던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남궁진 최재승 윤철상 전 의원과 설훈 의원 등 동교동계 핵심 7명은 “김대중 총재가 집권할 경우 정부의 정무직을 포함한 어떤 주요 임명직 자리에도 결코 나서지 않겠다”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떨쳐버리는 용기로 DJ 정부 탄생과 새 정부의 연착륙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년 전인 1997년 9월 얘기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백의종군 선언#문재인#권노갑#한화갑#김옥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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