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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참배 정치

이진 논설위원 입력 2017-04-05 03:00수정 2017-04-1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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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자리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신라 고승 도선(道詵)이 명당으로 점찍어 이곳에 갈궁사(葛弓寺)를 세웠다. 이 절은 고려 때 화장암으로 바뀌었고 조선시대에는 화장사로, 지금은 호국지장사로 불리고 있다. 이 절에 들렀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만약 절이 없었다면 내가 묻히고 싶은 땅”이라고 했다는 불교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지관(地官)의 식견도 높았다는 이 전 대통령은 이곳에 국립묘지를 만들었다.

▷국립묘지는 민족국가가 수립되면서 조성된 근대의 산물이지만 현충원에는 유교적 질서도 짙게 남아 있다. 묘지 크기가 사병은 3.3m²인데 장군은 8배 큰 26.4m²다. 대통령 묘역은 장군의 10배인 264m²로 왕릉이 부럽지 않다. 관존민비(官尊民卑)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4년 전 채명신 장군이 유언에 따라 사병 묘역에 안장돼 화제가 됐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장군 장교 사병 모두 4.49m²에 묻혀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어제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과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순으로 참배했다. 2012년 후보 때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만 참배한 그는 “군부독재 권위주의 정치세력이 진정한 반성을 하면 내가 제일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엔 통합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것 같다. 정치인이 큰일을 앞두고 대통령 묘를 참배하는 것도 유교의 흔적이다. 미국에선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정도 말고는 대통령 묘가 대부분 고향에 있어 일괄 참배가 불가능하다.

▷전직 대통령 묘역 참배를 놓고 논란이 이는 것은 ‘편가름 의식’이 아직 강하다는 증거다. 이름 없는 호국영령을 상징하는 무명용사탑만 참배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마침 문 후보는 방명록에 5년 전에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 만들겠습니다’, 어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썼다. 이제는 대선 후보들이 전직 대통령 묘역을 골라 참배하는 정치는 사라졌으면 한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참배 정치#문재인#갈궁사#박정희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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