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해도, 기어가도… 포기는 없다

임보미기자

입력 2016-08-23 03:00:00 수정 2016-10-22 04: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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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마라톤 완주 위한 사투
경기전 내린 비로 미끄러운 도로, 악조건에 근육 마비-부상 속출
이란 선수 엉금엉금 기어서 골인… 아르헨 선수는 ‘게걸음’으로 완주
중도포기 4년전보다 적은 15명뿐, 北 박철 등 완주 후 실신 잇따라


“할 수 있어 친구, 같이 뛰자” 다리에 경련이 온 아르헨티나의 페데리코 브루노(오른쪽)가 멈춰 서자 뒤따르던 파라과이의 데를리스 아얄라가 다가와 상태를 묻고 있다①. 결승선 앞에서 멈춰 선 브루노를 안타깝게 바라본 뒤 다시 뛰기 시작한 아얄라(왼쪽)②. 브루노(오른쪽)가 경련으로 앞으로 뛸 수 없게 되자 남은 거리를 옆으로 뛰고 있다③. 먼저 결승선에 도착한 아얄라(왼쪽)가 힘겹게 도착한 브루노를 힘껏 끌어안고 있다④. 응원단이 던져준 국기를 걸치고 경기장을 나오는 두 선수⑤. TV 화면 캡처·diarionorte.com
21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마지막을 장식한 남자 마라톤 경기.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2시간8분44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일찌감치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남은 은메달과 동메달도 금세 주인을 찾았다. 하지만 삼보드로무를 찾은 관중은 그 후로도 40분이 넘도록 결승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순위권에서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지만 인간의 한계라는 42.195km 완주를 위한 선수들의 사투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란의 모하마드 자파르 모라디는 결승선을 20m 남짓 앞두고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엉금엉금 기어온 모라디는 결승선에서 쓰러졌다. 그의 필사적인 완주 의지에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모라디는 1년 전 베이징 세계선수권에서 완주를 포기해 이란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이날 경기 전 리우에 쏟아진 비로 미끄러워진 길 때문에 많은 선수들이 레이스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르헨티나의 페데리코 브루노는 결승선을 앞두고 아예 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시간 30분 넘게 뛰면서 근육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던 것. 뒤따라오던 파라과이의 데를리스 아얄라는 멈춰선 그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왔다. 결승선을 앞두고 사투하는 동료의 모습에 쉽사리 발길을 뗄 수 없었던 데를리스는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계속 뒤를 돌아보며 브루노의 상태를 확인했다.

브루노는 결국 올림픽 마라토너라고 보기 어려운 ‘게걸음’으로 다시 뛰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완주를 위해서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승선에서 기다리던 데를리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브루노를 포옹으로 맞았다.

이날 155명이 출전한 마라톤에서는 2시간 30분을 넘긴 선수가 33명이나 나왔다. 런던 올림픽에서 8명밖에 없었던 것에 비하면 훨씬 많은 숫자다. 하지만 중도 포기자는 15명으로 106명이 출전했던 런던 올림픽(21명) 때보다 적었다. 형편없는 성적이라도 완주를 선택한 선수가 많았던 것이다. 완주 후 많은 선수들이 실신했다. 북한의 박철도 그중 하나였다.

손명준, 허벅지 부상 참고…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허벅지 부상을 입고도 절뚝이면서 풀코스를 완주한 손명준. TV 화면 캡처
한국의 손명준과 심종섭도 초반부터 햄스트링과 발꿈치에서 이상신호가 왔지만 중도포기는 이들의 선택지에 아예 없었다. 개인 기록은 고사하고 최하위 성적이 뻔한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달렸고 각각 꼴찌에서 9번째, 3번째로 경기를 마쳤다. 심종섭 뒤로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캄보디아로 귀화까지 한 일본 출신의 개그맨 다키자키 구니아키가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한편 은메달리스트 페이사 릴레사(에티오피아)의 세리머니도 화제를 낳았다. 릴레사는 결승선에 달려오며 ‘X자’를 여러 차례 그렸다. 단순 세리머니인 줄 알았던 이 표시에는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에티오피아 정부에 저항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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