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10>너무 사실적인 권력의 초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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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1650년
디에고 벨라스케스 ‘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1650년
흠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결점 하나쯤은 갖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거나 드러내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최고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결점을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 하고, 신처럼 완전무결하고 위엄 있는 존재로 보이길 원한다. 역사적으로 초상화는 그런 권력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되어 왔다.

하지만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교황 이노센트 10세(Innocent X)의 초상은 완전히 달랐다. 지배층의 위엄보다 그들의 번민과 인간적인 면을 즐겨 표현했던 벨라스케스는 교황의 초상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림 속 교황은 여름 공식 복장인 하얀 리넨 제의에 붉은 케이프와 모자를 쓰고,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의자에 앉아 있다. 이러한 교회 권력을 상징하는 장치들을 걷어내고 나면 76세의 늙고 고집 세 보이는 한 노인의 모습만 남는다. 양쪽 미간을 찌푸린 강렬한 눈빛과 자비심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냉엄한 표정은 교황의 위엄보다는 고압적인 태도를 더 잘 드러내고 있다.

이름의 뜻과 달리 이노센트 10세는 순수하지도 결백하지도 못했다. 일중독에 성격이 급했고 온건했지만 족벌주의와 여자 문제로 명예가 실추되기도 했다. 1644년 71세에 교황에 선출된 그는 즉위하자마자 조카인 카밀로를 추기경에 서임했고, 카밀로의 엄마이자 죽은 형의 아내인 마이달키니를 그의 정부로 두었다. 그녀 역시 교황의 형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부와 권력을 마음껏 휘둘렀고, 겨우 일곱 살 된 자신의 조카 프란체스코를 추기경에 앉힐 정도로 교황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교황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분개하고 비난했던 것도 바로 그녀였다.

하지만 교황 본인은 “모든 것이 너무나 사실적이다”라며 감탄하고 받아들였다. 빛나는 권력도 언제나 그 끝이 있듯, 제아무리 교황이라도 인간적 번민과 결점을 가졌으며 나이 들면 늙고 병드는 평범한 인간이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교황 이노센트 10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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