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6>몸의 정치와 예술…

  • 입력 2008년 4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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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정치와 예술,그리고 생태학 / 정화열 지금·아카넷

《“서구의 정태적이고 독백적인 ‘존재’ 사유 방식 또한 동적이고 상관적인 ‘상호적 존재’를 강조하는 동양적 사유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우물 하나를 깊게 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몸의 정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저자가 1999년 출간한 ‘몸의 정치’를 통해 내놓은 개념. 근대 서양 철학이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의식에 둠으로써 몸은 철학 논의에서 소외됐다는 것, 그러나 ‘나’는 의식뿐 아니라 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저자는 역설했다.

‘몸의 정치’란 인간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몸으로 맺는 인간관계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인간 사이의 상호관계를 전제하며, 인간이 서로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몸을 통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타인의 글을 읽는 것도 내 몸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몸의 정치’ 이후 6년 만에 나온 후속작이다. ‘몸의 정치와 예술, 그리고 생태학’이라는 제목 그대로, ‘몸의 정치’를 예술과 생태학까지 넓혀 적용한 저서다.

재미철학자인 정화열 미국 모라비언대 교수는 미국 정치철학계의 거두로 꼽히는 석학이다. 그는 현상학을 정치학에 접목해 ‘정치현상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면서 세계적인 철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미학적인 것은 철저히 행위 수행적인 몸의 담론이다.”

정 교수는 예술과 ‘몸의 정치’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고 동시에 예술과 문화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참신한 이론을 펼쳐 왔다. 예술 혹은 미학적인 것은 문화적 공백에서 존재할 수도 없고 살아남을 수도 없다는 것, 예술은 그 시대의 문화적 풍토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생태학이다. 1971년 미시간대에서 개최된 아시아환경회의에 참석한 이후 저자는 생태학과 환경 문제를 연구해 왔다. 그는 “환경은 인간의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몸의 상호관계’는 환경 문제와 뗄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생태 사상은 이 책의 3부 ‘대지 철학’에 대한 논의에서 잘 나타난다. 대지 철학의 핵심은 저자가 만들어낸 ‘환경 존중(ecopiety)’이라는 개념에 명확하게 담겨 있다. 이 환경 존중은 “인간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종 사이의 관계를 규정함에 있어서 ‘절대적 상호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와 사물은 상호 의존적이며 지구는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근원적 어머니라고 저자는 밝힌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정치학, 문학, 인류학 등 존재와 사물을 갈라놓고 논해 왔던 기존의 학문 경계를 가로지른다. 그의 사상을 ‘코스모폴리탄적 사유’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을 추천한 연세대 강신주(철학) 강사는 “현대 철학의 성과, 과학적 성과, 그리고 동양적 선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저자는 생태학적 사유의 논리와 그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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