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역사속 한식]고구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황광해 음식평론가
황광해 음식평론가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구마 이야기다.

조선후기 문신 서영보(1759∼1816)는 호남위유사로 호남 남쪽 해안의 사정을 살피고, 보고서를 올린다. 정조 18년(1794년) 12월의 일이다. 내용 중에 엉뚱하게도 “왜 고구마가 널리 퍼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있다.

‘고구마 종자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백성들이 다투어 심어서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경우가 왕왕 많았는데, 얼마 되지 않아 지방 관리의 가렴주구가 이어졌습니다. 관아와 아전들이 심하게 세금을 빼앗아가니 고구마를 심은 자는 곤란을 당하고 아직 심지 않은 자는 두려워합니다. 부지런히 심고 가꾸는 일이 처음보다 못하다가, 이젠 희귀하게 되었습니다.’(‘조선왕조실록’)

조선후기 조정의 관리들은 고구마가 훌륭한 구황작물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호남 남해안을 둘러본 서영보 역시 ‘구황작물 고구마’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현지 관리들의 ‘세금을 빙자한’ 엉뚱한 탐욕 탓에 고구마가 널리 퍼지지 않았음을 조정에 보고한 것이다. 지방 관리들의 탐학이 없었다면 고구마는 좀 더 널리, 빨리 퍼졌을 것이다.

조선의 학자, 정치인들은 고구마의 존재에 대해 일찍부터 알았다. 문신 남용익(1628∼1692)은 효종 6년(1655년), 조선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갔다. 그는 ‘큰 도시라 하더라도 솥을 걸고 밥을 해먹는 일은 드물고 왜인들 중 서민들은 주로 군고구마(燒芋·소우)를 먹는다’고 적었다(‘문견별록’). ‘우(芋)’는 토란 감자 고구마 등 넝쿨줄기식물을 통칭한다. 예전에는 고구마가 땅속에서 자라니 마치 토란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고구마가 한반도로 건너온 것은 훨씬 뒤다. 영조 때 문인 칠탄 이광려(1720∼1783)는 중국을 통하여 구황식물로서의 고구마 존재를 알고 몇 차례 고구마 재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의 노력은 조엄에 의해 빛을 본다. 조엄은 영조 40년(1764년) 6월 18일 일기에 고구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해사일기’).

‘이 섬(쓰시마)에 먹을 수 있는 뿌리가 있는데 ‘감저(甘藷)’ 또는 ‘효자마(孝子麻)’라 부른다. (효자마는) 일본 발음으로 ‘고귀마(古貴麻)’라 한다. 생김새는 산약(山藥·마를 칭함)과 같고 무 뿌리(菁根·청근)와도 같으며 오이나 토란과도 같아 그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 진득진득하고 반쯤 구운 밤 맛과도 같다. 날로 혹은 굽거나 삶아서 먹어도 된다. 곡식과 섞어 죽을 쑤어도 되고 썰어서 정과(正果)로 써도 된다. 떡을 만들거나 밥에 섞거나 되지 않는 것이 없으니 흉년을 지낼 밑천으로 좋을 듯하였다. 남경(南京)에서 일본으로 들어와 일본의 육지와 여러 섬에 많이 있다는데, 그중에서도 대마도가 더욱 많다.’

조엄은 조선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가서 두 차례 고구마 종자를 동래 일대로 보낸다. 1763년 일본에 도착한 후 바로 보낸 것은 재배에 실패했지만 이듬해 귀국 길에 보낸 종자는 재배에 성공한다.

고구마의 원래 이름은 ‘감저(甘藷)’였으나 북방에서 건너온 감자에게 그 이름을 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감저’를 ‘고구마’로 부르고 있다. “강진 고금도에서 널리 퍼졌기 때문에 ‘고금이’가 되고, ‘고구마’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다수설은 일본의 ‘효자마(孝子麻)’의 일본 발음 ‘고귀마(古貴麻 혹은 古貴爲麻)’에서 고구마가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고구마의 상품성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서도(황해도)의 담배밭, 평안도의 삼밭, 한산 모시밭, 전주 생강밭, 강진의 고구마밭은 아주 좋은 논에 비해서 그 이익이 열 곱절이 된다.’ 오주 이규경(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고구마는) 필리핀(呂宋國·여송국)에서 중국으로 전했고 영조 때 조선으로 건너왔다. 영남의 동래, 부산 등 해안가와 호남의 태인, 강진의 고금도 등에서 널리 재배한다. 전주(부)의 시장에 내다 판다”고 했다. 이규경의 시대는 고구마의 전래 시점부터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 사이 고구마는 시장에 내다 파는 환금작물이 된 것이다.

고구마 소주를 일본 특산물로 여기지만 그렇지는 않다. 우리도 일찍부터 고구마 소주를 만들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고구마 소주 제조법을 상세히 설명한다. ‘고구마를 썰어서 반건조 시킨 다음 술로 만든다. 소주 제조법은 쌀로 소주 만드는 법과 동일하다’고 했다.
 
황광해 음식평론가
#고구마#조선후기#고구마 종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