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문재인의 비즈니스 마인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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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주류에 무시당한 트럼프
문재인, 명예욕 건드리는 전략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아직도 그 비아냥거림을 잊을 수 없다.

2015년 6월 16일 오전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 건물주인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대통령이 번쩍거리는 황금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2016년 11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CNN은 속보를 전했다. 그런데 앵커나 패널 모두 웃고 있었다. 여성 앵커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가겠다네요, 하하”라고 했다. 한 패널은 “호텔 말고 무슨 성(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짓는다는데…”라며 비웃었다.

대선을 코앞에 둔 2016년 10월 7일. 트럼프는 지금으로 치면 초대형 ‘미투’ 사건에 연루됐다. 트럼프가 2005년 TV 프로그램에 나와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장면이 폭로된 것. 여성 성기를 뜻하는 ‘p****’가 들어간 걸쭉한 막말에 대부분의 언론은 “트럼프의 실체가 드러났고 선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일부 트럼프 참모는 선거운동 중단을 건의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남자들이) 탈의실에서 나누는 농담이다. 왜 나에게만 이러느냐”며 억울해했다.

그런 트럼프가 주류의 상징인 힐러리 클린턴을 이기고 취임한 지 1년 2개월이 다 됐지만, 미 주류의 태도는 변한 게 없다. 대통령으로서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반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10일 미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에서 2020년 재선용 슬로건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를 언급한 것도 자신을 무시하는 주류사회에 대한 분노, 서운함, 인정 욕구 등이 얽혀 있다.

이런 장면들이 떠오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북-미 중재 외교전에서 잇따라 던진 트럼프 칭찬 때문이다. 트럼프 띄워주기가 북-미 정상회담 수용에도 영향을 줬다고들 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올해 트럼프와 전화할 때마다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했다. 북-미 정상회담 수용 발표 후엔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력은 전 세계인의 칭송을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골수 트럼프 지지자들도 선뜻 하기 어려운 수준의 칭찬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말이 진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 대통령이 명예욕에 목말라하는 트럼프의 심리를 전략적으로 제대로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보니 꽤 오래전부터 트럼프의 이런 심리를 겨냥했다. 지난해 9월 뉴욕 유엔총회 기간 트럼프는 “북한을 멸망시키겠다”고 해 파장을 낳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그런 강력함이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해 주변을 더 놀라게 했다. 미국에서 “당신은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말을 주로 듣다가 문재인이란 외국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들은 것이다.

미국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워싱턴의 지한파인 J 씨와 12일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자신과 동갑(72세)인 트럼프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전형적인 백인 주류다. 그는 트럼프가 새로 내건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에 대해 “그게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뜻이냐?(What the f*** does that mean?) 외국인인 당신이 좀 설명해 봐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트럼프는 나 같은 노인이다. 사람이 70세를 넘으면 잘 안 바뀌고 칭찬에는 민감해진다. ‘프레지던트 문’은 인내심이 좋은 거냐, 트럼프를 좋아하는 거냐”고 했다.

문 대통령의 트럼프 공략은 일단은 성공한 듯하다. 물론 사업가 출신 트럼프가 칭찬 몇 마디에 계속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비즈니스맨 공략엔 전략적인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 역시 수확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문재인#트럼프#외교전#북미 정상회담#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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