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가족 지배 없애려 외국 투기자본에 기업 넘기는 건 큰일 날 짓”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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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정부 주도의 기업 지배구조 개편 방향에 대해 비판했다. 장 교수는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기업과 혁신생태계’ 대담에서 “삼성, 현대자동차같이 온 국민이 키워준 기업을, 가족 지배를 없애고 싶어서 기업 지배구조를 와해시켜 외국 단일주주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것은 큰일 날 짓”이라고 말했다. 수시로 엘리엇 등 해외 벌처 펀드의 공격을 받고 있는 우리 기업의 현실을 직시한 경고로 해석된다.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의 사촌 동생이기도 한 장 교수는 대표적인 진보 성향 경제학자로 꼽힌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와 진행한 이날 대담에서도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권 개입이나 노동이사제 도입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지지 의견을 냈다. 그런데도 기업 지배구조 개편을 단호하게 비판한 것은 한국 경제 성장이 정체된 원인이 투자 급감에 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외환위기 이전 14∼16% 수준이던 국민소득 대비 설비투자 비율이 7∼8%로 반 토막 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 투자가 줄어든 배경으로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외국인 자본을 꼽았다.

투자보다는 고배당을 요구하는 외국 자본에 휘둘려 미래를 고민할 겨를이 없는 것이 한국 대기업의 현주소다. 엘리엇의 공격을 받은 현대차가 주주가치를 올린다며 1조 원어치 자사주를 소각한 것이 불과 3개월 전이다. 지난해 현대차 연구개발(R&D) 투자액(2조4000억 원)의 40%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배구조를 수술해 경영권 보호막까지 무력화시킨다면 한국 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장 교수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 보유기간에 따라 의결권 가중치를 두는 ‘주주 가중의결권’ 도입을 제안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오히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주주나 경영진에 더 많은 의결권을 줘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도록 하는 선진국 흐름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과 지주회사 요건 강화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편 방안 역시 대주주 옥죄기 성격이 짙다. 대주주의 사익편취나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서라면 사후 규제로도 충분하다. “기업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으며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장 교수의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엘리엇#벌처 펀드#기업 지배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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