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7월 18일]‘체조요정’ 코마네치 연기에 전광판 ‘1.00’ 표기된 사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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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을 때 모두들 어리둥절해했다. 환상적인 2단 평행봉 연기를 막 마치고 내려온 열네 살 체조선수 소녀가 받은 점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광판이 표기할 수 있는 최고 점수는 9.99. 소녀가 받은 점수는 10점 만점이었다. 1976년 7월 18일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세계 체조사상 첫 만점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2단 평행봉을 연기하는 나디아 코마네치. 동아일보 DB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2단 평행봉을 연기하는 나디아 코마네치. 동아일보 DB

그 주인공은 루마니아의 나디아 코마네치. 그는 이후에도 여섯 번이나 더 10점 만점을 받으며 몬트리올 대회에서 2단 평행봉과 평균대, 개인종합 금메달을 차지했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만점 기록이었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코마네치가 받은 훈련이 거의 아동학대 수준이어서였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하루 수 시간씩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엄격한 식단 관리를 계속해야 했다.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동아일보는 코마네치의 별명인 ‘작은 바위 얼굴’에 대해 “인간을 기계화시키면서까지 초인적인 선수들을 만드는 동구 공산권의 체육정책을 꼬집는 것”(1976년 7월 23일자)이라거나 ‘이 무거운 멍에는 천진난만하게 자라나야 할 발육기 소녀에게 지나친 주문이요 잔인한 학대행위가 아닌가’(8월 11일자)라고 지적했다.

동구권의 가혹한 체육 훈련을 비판한 동아일보 1976년 8월11일자 8면 지면.
동구권의 가혹한 체육 훈련을 비판한 동아일보 1976년 8월11일자 8면 지면.

실제로 올림픽 직후 코마네치는 혹독한 훈련에 저항하듯 방만한 생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다시 추슬러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더 목에 걸었다. 이후 1989년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인 남편과 함께 체조 관련사업을 해오고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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