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강압적 성관계’ 상습성 입증땐 실형 가능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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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 법원 판례 분석해보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의 비서였던 김지은 씨(33)는 그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업무상 위력 간음) 혐의로 고소했다. 상급자가 하급자 동의 없이 성관계를 맺은 혐의다. 폭행이나 협박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위세에 눌린 하급자가 마지못해 성관계를 한 것이 입증되면 유죄다. 권력형 성범죄 단죄를 위해서다.

13일 동아일보는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업무상 위력 간음’ 사건에 내려진 법원 판결을 분석했다. 이 기간 중 이뤄진 판결은 9건. 최근 ‘미투(#MeToo·나도 당했다)’를 통해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례가 쏟아지고 있지만 막상 법정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9건 중 8건은 유죄로 판결났다.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었거나 여러 명에 이르는 등 상습성이 입증된 경우다. 물리력을 동원한 성폭행에 비해 수사 과정에서 혐의 입증이 쉽지 않지만 기소가 이뤄지면 처벌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제3의 피해자 가능성까지 제기된 안 전 지사도 비슷한 방식의 범행이 확인되면 유죄 가능성이 크다.

○ 재판 넘겨지면 유죄·실형 판결 유력

업무상 위력 간음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재판 8건 중 7건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1건은 집행유예였다. 앞서 대법원은 2007년 “위력이란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勢力)으로 사회·경제·정치적 지위와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업무·고용의 상하관계라고 해서 무조건 위력이 작용하는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그 대신 폭행이나 협박을 동원하고 약물 등으로 피해자를 불가항력 상태에 빠뜨린 경우 유죄가 내려졌다. 피해자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가해자에게 완전히 종속된 경우도 있었다. 비슷한 수법으로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경우도 유죄에 해당됐다.

회사 대표 A 씨(64)는 여직원 2명을 상대로 성관계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사무실 문을 잠그고 퇴근을 막았다. A 씨는 면접을 보러 온 20대 여성 6명에게 “취업시켜 주겠다”며 유인해 추행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여러 피해자를 상대로 상습적으로 위력을 행사해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자영업자인 B 씨(38)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19세 여직원에게 최음제 등 약물을 음료에 몰래 타서 먹인 뒤 성폭행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력이 가해졌다고 판단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기업체 간부인 C 씨(59)는 여직원을 3차례 추행하고 4차례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다. C 씨는 “시골로 보내버리겠다”는 등의 인사 불이익을 거론하며 피해자를 위협했다. 그는 같은 직장에 있는 피해자 남편의 인사권까지 쥐고 있었다.

○ 상습성 입증이 관건

안 전 지사와 김 씨는 업무 과정에 있어 수직적 관계이다. 하지만 최근 1년간의 판례를 볼 때 이것만으로 강압적 성관계였다는 걸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한 변호사는 “추행과 간음이 반복되는데 김 씨가 왜 피하지 않았느냐는 재판부의 의구심을 해소해야 유죄 판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검찰은 ‘상습성’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안 전 지사가 김 씨 외에 여러 하급직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면 업무상 위력 간음이 상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서울서부지검은 안 전 지사에게 세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에 대해 이미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고소가 접수되지 않았지만 안 전 지사의 혐의 입증을 위해 검찰이 선제적 수사에 나선 것이다.

또 이날 오후 충남 홍성군 충남도청 도지사 집무실과 비서실 관사, 그리고 경기 광주시에 있는 안 전 지사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차량 블랙박스 자료와 행사 일정이 촬영된 동영상도 확보했다.

두 사람 외에 세 번째 피해자가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는 13일 “추가 피해자가 최소 1명 이상 있고 피해 내용도 기존 사례와 유사하다. 그분도 고소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상 위력 간음죄를 규정한 형법 303조는 ‘상습범의 경우 가중 처벌한다’는 조항이 적용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안 전 지사가 2명 이상의 여성을 상대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유죄뿐 아니라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유주은 / 홍성=지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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