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대통령 생가 복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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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12명 중 유일하게 태어난 집을 가볼 수 없다. 그의 고향이 휴전선 넘어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대경리에 있는 탓이다.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잠깐 거처했던 이화장 정도다. 나머지 대통령 11명은 유년시절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생가(生家)가 있다. 대통령이 출생한 곳이라면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들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풍수(風水) 또는 발원(發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대통령 생가 중 으리으리한 저택이라고 할 만한 곳은 충남 아산시에 있는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다. 그는 열 살 때까지 아흔아홉 칸 기와집에 살았다고 한다. 지금 생가에도 과거의 영광이 남아 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들 생가는 대부분 원래의 초가집으로 복원됐다. 전두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옛 모습 그대로 되살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경북 구미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변은 지방비 286억 원을 넣어 공원으로 바뀌고 있다. 2015년에는 박근혜 대통령 생가 복원 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경남 거제시가 문재인 대통령 생가 복원에 나서자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문 대통령 자신도 “대선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불쾌감을 보였다고 한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열흘도 안 됐는데 생가 복원 얘기가 나오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등 2명을 배출한 거제시로서는 관광객 유치의 호재라고 여겼을 것 같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거제시장이 실적으로 삼으려는 계산도 했을 법하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의 생가는 소박함 그 자체다. 전쟁 때 주민들이 생가가 폭격으로 사라질까 봐 지붕과 벽을 뜯어 보관했다가 나중에 복원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 역대 대통령 생가 중 주민들의 이런 사랑을 받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몇몇 대통령 생가에 잊을 만하면 방화가 일어나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기부를 받았든, 세금을 들였든 생가를 아무리 성지(聖地)처럼 치장한들 대통령 재임 때의 평가를 뒤집을 수는 없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이승만#대통령 생가#문재인#대통령 생가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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