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3〉물고기여, 그가 오면 줄행랑 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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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게잡이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주민들이 망둥이를 낚을 때 그는 갯벌을 걸어 다닌다. 바닷물이 빠지는 3시간 동안 맨손으로 500마리 넘게 건져 올린다. 팔을 뻗으면 열이면 열 다 잡힌다. 작은 인기척에도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숨는 망둥이가 자석에 쇳조각 붙듯 한다. 박하지라 부르는 돌게도 보이는 족족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꽃게에 비해 무는 힘이 월등히 센 집게발도 그의 손놀림에는 속수무책이다. 신석기인이 창으로 물고기를 사냥하던 모습이 저러했으리라. 몸의 감각과 민첩한 동작만으로 밥벌이를 하는 연평도의 신석기인 채 씨 아저씨.

그는 연평도 최고의 낚시꾼이기도 하다. 26년 동안 매년 200일 이상 낚시를 했다. 연평도 해안의 물때, 장소와 시기에 따른 어종, 낚시 포인트, 수심, 해저 지형 등 연평도 해안과 물고기를 훤히 꿰고 있다. 물고기의 생태, 좋아하는 장소, 물을 따라 들어왔다가 나가는 길목 등 모르는 게 없다. 그는 몸으로 바다와 물고기를 익힌 사람이다. 그에게는 오랜 경험을 꼼꼼히 기록한 노트가 있다. 썰물과 밀물의 높이와 갯바위 아래 여의 깊이, 계절에 따른 물의 흐름과 바람, 물고기의 종류 등을 빠짐없이 적었다.

필자는 그를 보며 ‘자산어보’를 떠올렸다. 신유박해 때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丁若銓)은 흑산도 주민인 장덕순(張德順·일명 昌大)의 도움을 받아 자산어보를 저술했다. 자산어보는 물고기의 형태, 습성, 맛, 이용법, 어구, 어법 등을 기록한 흑산도 어류박물지다. 200년 전 정약전에게 해산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장덕순이 있었기에 자산어보는 만들어질 수 있었다. 자산어보는 장덕순의 경험담과 정약전의 기록이 합쳐진 공동 저작인 셈이다. 우리 바다의 해양생물을 기록한 최고의 고서는 그렇게 탄생했다.

채 씨 아저씨는 자연의 순환에 따라 물고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경지에 오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 물고기와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의 연속. “연평도 앞바다에 사는 농어는 풀망둑을 낚시 미끼로 쓸 때 반응이 좋아요. 연평도 갯벌에는 문절망둑보다 풀망둑이 훨씬 많거든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고, 물고기도 자주 보던 먹이에 반응이 더 좋을 수밖에요.” 물고기는 정해진 법칙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개별적 습성과 변덕이 앞서기도 한다. 아저씨도 빈손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물고기와 바다의 움직임, 바람과 갯바위를 관찰 및 기록하고 다시 고치기를 20여 년간 반복했다.

필자는 그의 기록물을 보며 환호했다. 마치 200년 전에 흑산도에 살던 장덕순을 연평도에서 만난 기분이랄까. 한동안 그가 가는 곳마다 무조건 따라다녔다. 정약전이 그러했듯이. 바다 일을 기록하는 데 이골이 난 필자도 몸으로 말하는 그의 지식을 온전히 적을 수가 없었다. 필자는 10개월을 연평도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하여 기록했지만 낚시와 갯벌에 관한 내용은 채 씨 아저씨의 노트에 의존했다. 기록을 남기는 자는 몸으로 체득한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정약전과 장덕순의 노고를 생각하며 연평도의 채 씨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는 여전히 연평도의 갯벌이며 갯바위를 넘나들고 있을 것이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연평도#낚시#자산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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