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성의 盤세기]그리운 ‘금강산타령’ 남북이 합창하는 날 그리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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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요절 가수 최향화의 유작 앨범

김문성 국악평론가
김문성 국악평론가
속초를 이항하기 전 금강호에 승선한 금강산 관광단은 ‘그리운 금강산’을 목 놓아 부릅니다. 그러나 장전항이 가까워지면 더 이상 그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애국가가 그랬듯 가사를 문제 삼아 북한이 금지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초반 금강산 관광 뱃길이 열렸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골목길, 여학우들이 모이는 곳에는 늘 고무줄 놀이판이 벌어집니다. 마을마다 지역마다 부르는 노래와 발재간은 달랐지만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시작하는 ‘금강산’만큼은 같았습니다.

금강산만큼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는 산도 없습니다. 민족의 이상향처럼 인식되는 데다 지금은 분단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는데요. 1933년 발표된 신민요 ‘금강산타령’(이고범 작사·김월신 작곡)이 대표적입니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예기(藝妓) 양성소인 조선권번 출신 춤꾼 4인방이 있었습니다. 경성의 사교계를 주름잡던 문금자, 최향화 일행인데요. 이들 중 뛰어난 미모와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최향화는 늘 장안의 화제였고, 결국 작곡가 김서정의 눈에 띄어 가수로 발탁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댄서 출신 직업가수가 탄생한 겁니다. 최향화는 1933년 창작 아리랑인 ‘포구의 달빛’으로 데뷔해 상한가를 칩니다. 맑고도 애틋한 묘한 매력이 일품인 최향화의 목소리에 대중의 귀가 호사를 누리는 것도 잠시, 데뷔 이듬해인 1934년 5월, 19세의 어린 나이에 그만 폐렴으로 요절합니다. 타계 5개월 전,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들인 이대근, 남궁선, 김연실과 함께 합창곡을 발표하는데 이 노래가 당시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받았던 ‘금강산타령’입니다.

오늘날 남한에서는 신민요연구회 같은 단체의 재현 공연 때나 들을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크게 대접받는 대표적인 계몽기 가요로, 공훈배우 홍탄실이 리메이크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울산큰애기, 태평연, 대동강이 좋을시고 같은 계몽기 가요가 가사나 곡명이 바뀐 채 전해지는 것과 달리 ‘금강산타령’은 발표 당시와 아무런 변함 없이 불리고 있습니다. 다음 남북예술인 합동공연 때는 남북 가수들이 함께 이 ‘금강산타령’을 불러보면 어떨까요.
 
김문성 국악평론가
#금강산타령#최향화#포구의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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