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이봉원이 짬뽕집 요리사 된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2일 14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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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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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왜 지방에 와 있어요?”

“짬뽕 팔러 왔죠.”(웃음)

개그맨 이봉원 씨(55)가 8월 말 천안 두정동에 자신의 이름을 딴 ‘봉(奉) 짬뽕’집을 열자 지역 주민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가게 앞에는 개그맨 이경애 김준호 박나래, 가수 한혜진, 최용수 축구 해설위원 등 각계 인사들의 화환이 수북이 걸려있었다.

5일 가게에서 만난 이 씨는 머리에 두건을 두른 채 요리복을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주방장이었다. 가게는 테이블 14개에 보통 중국음식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왜 천안에서, 왜 짬뽕집을 연 것일까.

“한 지인이 천안에 장사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추천했어요. ‘서울보다 지방에서 내 실력을 검증받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 짬뽕은 예전부터 좋아했어요. 술 좋아하니 해장에 제격이잖아요.”

이 씨는 지난해 ‘재수’ 끝에 중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이미 2016년에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갖고 있던 터였다. 시험은 중식 26가지 중 당일 무작위로 요리 2가지를 만드는 것. 모든 요리 방법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는 깐풍기와 부추잡채 요리로 합격증을 받았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특별한 짬뽕 맛이 필요했다. 올해 7월 그가 3년간 단골로 다녔던 서울 은평구 연신내의 ‘중화원’을 찾아가 비법을 전수해달라고 요청했다. 50년 간 2대 째 중국집을 운영해 온 두은주 사장은 “분점도 안내주는데 짬뽕 노하우 전수는 더더욱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천안=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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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가게에 출근해 문을 닫을 때까지 서빙을 도왔다. 손님들이 “이봉원 씨가 운영하는 가게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렇게 2주가 흘렀을까. 사장이 한가한 오후 시간에 이 씨를 주방으로 불렀다.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짬뽕 비법을 가르쳐 줬다. “한 달 동안 중화원 식구들이 가르쳐 준 중식 비법은 천안 가게를 여는 원동력이었어요. 짬뽕은 물론 짜장면, 탕수육, 해물누룽지탕 등이 그 곳에서 배운 겁니다. 오픈할 때 가게에 찾아와 요리를 도와주는 등 평생 은인이 됐죠.”

그는 짬뽕으로 성공하기 위해 천안에 사는 후배 빌라에 머물며 가게를 지키고 있다. 경기 일산 본가에 거의 가지 않아 집에서 불만이 많지 않느냐고 하자 “내가 없으니 아내(방송인 박미선)가 더 좋아하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봉원 표 짬뽕이 궁금하다”고 하자 이 씨는 “영업 비밀”이라면서도 주방으로 안내했다. 능숙하게 철제 웍(중국식 프라이팬)을 왼손에 쥐더니 가스 불을 붙였다. 고춧가루와 식용유를 볶은 뒤 각종 야채와 오징어, 조미료를 섞더니 마지막에 숙주나물, 부추를 올려 2분 만에 짬뽕 국물을 완성했다. 쫄깃한 면발에 담백하게 매운 짬뽕 국물이 입에서 조화를 이뤘다. 그는 “아직 중화원 짬뽕에 비하면 80~90% 수준”이라며 “계속 만들다보면 나만의 짬뽕 스타일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사실 이 씨는 부업으로 수차례 실패한 과거가 있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연기학원, 가라오케, 커피숍, 삼계탕, 불고기집을 열었지만 모두 망했다. 사업이나 요리를 모르던 시절에 주위 말만 듣고 투자했다가 비싼 수업료를 낸 거였다. 그는 “내가 직접 요리하는 음식점을 낸 건 처음이라 힘은 들지만 재미도 있다”며 “손님들이 짬뽕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천안=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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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하루 수입은 얼마나 될까. 개업 후 하루 200만~300만 원 매출은 된다는 게 이 씨의 얘기다. 최고 인기 메뉴는 짬뽕으로 전체 매출의 80% 정도라고 한다. 배달이나 예약은 받지 않는다. 그는 “배달을 하면 국물이 식고 면발이 굳어 제 맛을 잃어버린다”며 “짬뽕 하나 만은 이봉원이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이 씨는 과거 ‘동작 그만’ 코너의 곰팡이, 코믹 댄스그룹 ‘시커먼스’로 인기를 누렸다. 다시 코미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방송 환경이 많이 바뀌어 노장들이 설 곳이 없죠. 억지로 매달려 방송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요즘 젊은 개그맨들도 나이든 선배와 함께 무대에 서는 걸 부담스러워 하죠. 돌이켜보면 저 역시 젊었을 때 고참 선배들을 불편해 했으니, 인과응보일까요.(웃음) 지금은 짬뽕으로 승부를 걸어야죠.”

천안=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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