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15>배가 커지다 못해 ‘터지겠다’ 싶을때…넷째가 태어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0일 1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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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가 태어났다.

열 달 간 배 안에 품었던 아이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단풍잎 같은 손, 인형 같은 발, 해사한 얼굴이 드디어 내 품에 안겼다. 세상에! 이제 난 진짜 네 아이의 엄마다.

매 임신마다 출산일 직전까지 근무했던 나는 넷째가 나오던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38주에 들어서면서 배는 정말 산만해졌다. 한 남자 기자는 “여자들 말이 배가 커지다 못해 ‘터지겠다’ 싶으면 애가 나온다던데 네 배가 그렇다”고 말했다.

나도 슬슬 때가 다가온단 느낌을 받았다. 뭐라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묵직한 느낌이 좀 더 묵직해질 때, 혹은 아래로 더 쏠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출산이 임박했단 신호다. 이날 점심약속을 마치고 회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어쩐지 배에서 그런 느낌이 났다. 회사 앞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고민할 겨를 없이 곧장 동네 병원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

병원으로 가는 새 진통이 살살 시작됐다. 지방에서 근무 중인 남편에게 ‘나 진통 오는 것 같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몇 분 간격이야?’라는 남편 질문에 시간을 재어 봤다. 오 이런! 벌써 10분 간격이었다. 경산모(두 번 이상 출산한 산모)에게 10분 간격 진통이란 출산 과정이 시작됐음을 의미했다.

외래진료도 들르지 않고 곧장 분만실로 향했다. 분만실 간호사들은 멀쩡하게 화장을 하고 회사원 복장에 백팩을 메고 걸어 들어오는 산모를 처음에는 의아하게 바라봤다. “저 경산모인데요, 진통이 10분 간격이라 곧장 이리로 왔어요” 하자 “네?”하고 놀라며 그제야 부랴부랴 나를 침대로 안내했다.

태동검사를 하고 경부가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질 안을 만져보는 ‘내진’을 한 간호사는 갸우뚱했다. “아직 경부가 열리진 않았는데 경산모이니 조금 지켜보게 누워 계세요.” 간호사의 말은 ‘오늘은 출산하지 않으실 테니 좀 누워있다 집에 가세요’라는 뜻 같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뭔가 ‘촉’이 왔다. ‘어쩐지 수 시간 내로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넷째 엄마의 촉이었다. 오후 일정 참석이 힘들겠다고 회사에 연락을 하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진통의 강도가 강해졌다. 간격도 재어보니 6분 사이로 짧아졌다.

급히 간호사를 불러 다시 내진을 부탁했다. 30여 분 새 경부가 2cm 넘게 벌어져있었다. 간호사는 놀라며 “어머, 무슨 진행이 이렇게 빨라? (산부인과 전문의) 선생님께 연락 드릴게요”하고 사라졌다. 그 사이 나는 남편에게 ‘오늘 아이가 나올 것 같다’고 연락하고 친정엄마에게도 당장 와주십사 전화를 걸었다.

그 다음부터는 뭐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르겠다. 진통의 간격이 급격히 짧아져 친정엄마가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2~4분 간격이 돼있었다. 지방에 근무하는 남편이 ‘KTX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고 보낸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분만실로 이동했다. 그 사이 진통은 2분 간격으로 더 짧아졌다. 남편 대신 엄마의 손을 부여잡으며 “아파요, 아파”하고 버텼다. 간간히 간호사가 옆에서 “산모님, 진행이 빠르니 조금만 힘내세요”하는 말이 들렸다.

남편은 출산 30분 전에야 겨우 도착했다. 이미 내가 출산 자세를 하고 힘을 주고 있을 때라 남편은 수술복을 입을 새도 없이 겨우 손만 씻고 분만실로 들어왔다. 내 입에서는 “아파”, “무서워”라는 말이 쉴 새 없이 나왔다. 보다 못한 엄마가 “애를 네 번이나 낳아놓고 뭐가 그리 무섭냐”고 핀잔을 주셨지만, 네 번 낳아도 아픈 건 아픈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오후 7시 43분, 병원 온지 4시간도 채 안돼 아이가 내 손에 안겼다. 세 아이를 낳는 동안 한 번도 감동적이라고 느끼거나 눈물 흘린 적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갓 나온 넷째를 보자 눈물이 났다. ‘마지막 아기’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감성이 예민해졌던 것 같다. 처치를 위해 신생아실로 떠나기 전 잠시 품에 안았는데, 가슴 속에서 울컥 하는 것이 올라왔다. 이 작고 섬세한 것이 나의 새로운 아기라니. 새삼 놀랍고 경이로웠다.

아기가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나는 나머지 처치를 위해 조금 더 분만실에서 머문 뒤 병실로 이동했다.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새삼 내가 처한 현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여느 때처럼 가방을 메고 출근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이라니. 더구나 이제 세 아이의 엄마에서 네 아이의 엄마라니.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상전벽해란 게 이런 느낌일까.

남편도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이제 내가 네 아이의 아빠라니, 참.” 한동안 나도 신랑도 병실 한 구석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잘 키우자.” “그래, 잘 키워야지.”
아이 셋 부모임에도 여전히 잘 키운단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그렇게 다짐하는 것으로 서로의 감상을 대신했다. 그래, 이제부터야말로 진짜 포(four)에버(ever) 육아 시작이다. 힘내자!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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