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윤종]전자담배가 덜 해롭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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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종 정책사회부 기자
김윤종 정책사회부 기자
서울 광화문우체국 옆. 삼삼오오 한 모금의 여유를 즐기는 회사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무심코 지나가다 회사원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흡연자1: “근래 보기 드문 발명품이야. 아침에 일어날 때 목도 안 아파.”

흡연자2: “팀장님. 저도 이참에 갈아타려는데 정말 덜 해로운 거 맞죠?”

흡연자3: “한 대 피우고 키스해도 애인이 모른답니다.”

1과 3의 손에는 전자담배가 들려 있었다. 아이코스, 릴 등 궐련형 전자담배는 담뱃잎을 전기로 쪄 피우는 제품이다. 지난해 5월 첫 출시 이후 11개월 만에 1억6300만 갑이 팔렸다. 지난해 한 달 평균 3억 갑씩 팔리던 일반 담배는 올해 3월 2억4400만 갑이 팔리는 등 감소 추세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전체 담배 판매시장에서 10%에 육박한 데엔 애용자들의 ‘예찬론’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흡연 후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아 귀가 직전 피워도 아내나 아이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는 식이다.

‘덜 해롭다’는 의견도 전자담배 예찬론의 주 레퍼토리다. 기자의 지인은 ‘궐련형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보다 발암물질인 알데히드가 80∼95% 적게 배출된다’는 독일 정부의 최근 조사결과를 들며 “내 선택이 옳았다”고 외칠 정도다. 정부의 금연정책을 다뤄온 기자 역시 한동안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해로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궐련형 전자담배 관련 국내외 연구를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담배 제품은 그 형태가 어떻든 결국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미국의사협회지(JAMA)는 궐련형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처럼 니코틴과 일산화탄소뿐 아니라 포름알데히드 등 각종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스위스 베른대 연구에 따르면 아이코스에서 살충제 원료인 아세나프텐이 일반 담배의 3배 수준으로 검출됐다. 아이코스를 판매하는 필립모리스 자체 실험에서도 아이코스 연기에 포함된 타르 함량은 일반 담배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궐련형 전자담배 속 각종 유해물질의 양이 설사 일반 담배보다 적더라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까지 적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형태나 사용 방법에 따라 특정 질병 위험성은 줄어도 다른 질병 위험성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입안에 넣는 티백 형태의 담배 ‘스누스’는 폐암을 줄여 인기를 누렸지만 구강암 발생률을 높여 논란이 됐다.

어느덧 기자는 궐련형 전자담배 예찬론을 들으면 ‘역설’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궐련형 전자담배 역시 담배라는 인식이 내면에 깔려 있다 보니 ‘덜 해로운 걸 피운다’는 자기합리화를 위해 예찬을 쏟아내는 것은 아닐까? 비흡연자를 대신해 이렇게 묻고 싶다.

“건강에 덜 해롭다고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왜 가족들 앞에서 당당하게 피우지 않는 건가요?”
 
김윤종 정책사회부 기자 zozo@donga.com
#전자담배#금연정책#유해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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