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는커녕… 승차거부-바가지 택시에 뿔난 올림픽 손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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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택시 특별단속 동행해보니

10일 0시 무렵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명동역 8번 출구 앞 도로에서 서울시 직원이 외국인 승차를 거부한 택시운전사에게 과태료 고지서를 발부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10일 0시 무렵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명동역 8번 출구 앞 도로에서 서울시 직원이 외국인 승차를 거부한 택시운전사에게 과태료 고지서를 발부하고 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9일 오후 11시경 서울 중구 지하철 4호선 명동역 8번 출구 앞. 필리핀 관광객 체리 씨(31·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었다. 옆에는 그의 어머니와 오빠가 양손에 쇼핑가방을 들고 있었다.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체리 씨 가족은 이날 한국에 왔다. 겨울 관광지로 평창 올림픽이 열리는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중구 만리동에 숙소를 잡은 체리 씨 가족은 늦은 밤까지 명동에서 식사와 쇼핑을 즐겼다. 그리고 차량으로 10분 정도 걸리는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 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길 위에서 15분가량 시간이 흘렀다. 체리 씨가 열심히 손을 흔들었지만 10대가 넘는 택시가 그냥 지나쳤다.

“택시, 택시.”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택시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창문을 내렸다. 한국말이 서툰 체리 씨는 창문 너머로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숙소 이름과 위치가 적힌 지도 화면이었다. 그러자 택시 운전기사는 갑자기 손을 크게 저었다. 이어 곧바로 창문을 올린 뒤 출발하려 했다. 그 순간 한 남성이 뛰어가 택시 앞을 가로막았다. 외국인 대상 바가지요금을 적발하는 서울시 교통지도과 소속 단속관 이성열 씨(67)다. 이 씨는 승차거부를 확인하고 20만 원짜리 과태료 고지서를 발부했다. 택시 운전사는 승차거부를 부인했다. “몸이 아파 집에 가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운전사는 20분 넘게 화를 내다가 자리를 떴다. 체리 씨는 “올림픽이 시작해 택시 타는 게 어렵지 않을 걸로 생각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맞아 요즘 서울에서는 ‘택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일부 택시의 불법행위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것이다. 1일부터 다음 달 말까지 사복을 입은 서울시 직원들이 ‘잠복 단속’을 벌인다. 승차거부나 부당요금 등 위법 행위를 현장에서 적발한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동행 취재한 9일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명동과 동대문 등지에서 19건이 적발됐다. 부당요금 3건, 승차거부 8건, 택시표시등 위반 8건이다.

정기적인 단속과 외국인 인식 개선 덕분에 과거 있었던 수십만 원짜리 바가지요금은 이제 찾기 힘들다. 그 대신 승객이 부당요금을 쉽게 알 수 없도록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이때 활용하는 수단이 할증제도다. 이날 오후 11시 50분경 50대 일본인 부부는 인천공항에서 명동까지 택시를 타고 오면서 7만 원을 냈다. 정상 요금보다 1만3000원가량 많다. 할증을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공항은 할증 구간이 아니다.

‘지연 운전’ 사례도 있다. 공항으로 가는 외국인 승객이 대상이다. 이때 일부러 느리게 운전한다. 출국시간이 임박해 다급해진 승객이 돈을 더 건네면 그제야 정상 속도로 운전한다. 단속이 강화되면 호텔 정문 앞 하차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 보통 하차 지점에서 단속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 대신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승객을 내려준 뒤 요금을 받고 이동한다. 단속관 장연화 씨(36·여)는 “일부 권역별로 택시들이 연계해 단속정보를 공유하는 움직임도 있어 현장에서 위법행위를 적발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단속 현장마다 서울시 직원과 택시운전사의 실랑이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택시운전사는 순순히 위법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도망가는 택시를 막아 세우다 단속관이 치일 뻔한 상황도 흔하다. 10일 오전 1시경 명동에서 외국인 승객을 골라 태우다 적발된 한 택시운전사는 입고 입던 점퍼를 바닥에 팽개치고 단속관에게 10분가량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고광림 서울시 교통지도과 팀장(55)은 “일부 택시의 위법행위에 피해를 입은 외국인 관광객은 돈보다 즐거웠던 여행 분위기를 망친 걸 더 안타까워한다. 올림픽 기간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는 만큼 더 엄격히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정훈·정현우 기자
#평창올림픽#택시#승차거부#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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