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인의 잡학사전]A-10, F-14…비행기 이름 어떻게 정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4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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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A-10, B-1, F-14. 비행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은 이렇게 알파벳과 숫자로 돼 있는 이름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건 어떻게 정하는 걸까요? 미 공군 홈페이지
왼쪽부터 A-10, B-1, F-14. 비행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은 이렇게 알파벳과 숫자로 돼 있는 이름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건 어떻게 정하는 걸까요? 미 공군 홈페이지


“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미 공군에서는 VC-25라고 부른다는 잡학사전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런 비행기 이름은 어떻게 짓는 건가요? 또 비행기가 아니더라도 K1, M16 등 무기 이름에 붙는 숫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 경기 파주시에 사는 S 씨

좋은 질문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이렇게 몰라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알고 궁금하신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kini@donga.com으로 e메일 보내주시면 성심껏 취재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미 군용기 이름은 어떻게 붙일까?

그럼 먼저 비행기부터 가볼까요? 정확히는 미군기에만 저런 스타일로 이름이 붙습니다. VC-25라는 이름 자체가 ‘미국 항공 및 우주 장비 명명법’에 따른 ‘제식명칭’이거든요. 여기서 제식(制式)은 군대에서 ‘제식훈련’할 때 그 제식입니다.

미국에서 이 명명법을 도입한 건 1962년이었습니다. 그 전에 만든 비행기는 ‘F-86 세이버’처럼 지금 규칙하고 맞지 않는 게 많습니다. 이 명병법을 도입하기 전까지는 같은 기종도 육·해·공군에서 서로 부르는 이름이 다른 일이 많았습니다. 가장 예로 많이 드는 게 이제는 ‘F-4 팬텀 II’라고 부르는 기체였습니다. 미 해군에서는 이 비행기를 F4H라고 부르고 미 공군에서는 F-100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2008년 촬영한 미 공군 소속 F-4 팬텀 II. 미 공군 홈페이지.
2008년 촬영한 미 공군 소속 F-4 팬텀 II. 미 공군 홈페이지.


같은 비행기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효율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 그래서 1961년 미국 국방장관이 된 로버트 맥나마라가 군용기 명명 규칙을 통일하라고 지시했죠. 그래서 도입한 게 바로 트라이서비스(Tri-Service) 혹은 MDS(Mission-Design-Series) 명명법이라고 부르는 시스템입니다.

MDS를 하나씩 뜯어보면 임무(Mission) - 디자인(Design) - 시리즈(Series) 순서로 돼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냥 끝나도 복잡할 텐데 실제로는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표기합니다. 아래처럼 말이죠.



차근차근 뜯어보면 맨 앞에 나온 G는 현상, 그러니까 현재 상태를 가리킵니다. G는 영구 지상 설치, 그러니까 다시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은 이 비행기가 정찰(Reconnaissance)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투기(Fighter)라는 뜻. 여기까지가 임무(Mission)에 해당합니다.

MDS는 개발(디자인) 순서 앞에 하이픈(-)을 넣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비행기는 원칙적으로 F-4니까 전투기 중 네 번째로 디자인을 시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시리즈가 나옵니다. C는 이 F-4 중에 세 번(A, B, C)째 버전이라는 뜻이고, 15는 세 번째(5, 10, 15) 생산 블록에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종합하면 세 번째 버전을 세 번째로 양산할 때 이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MC는 이 비행기 제조회사가 맥도널 더글라스라는 의미. 경우에 따라서는 ‘맥도널 더글라스 F-4 팬텀 II’처럼 제조 이름이 앞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팬텀 II’는 위에 나온 설명 그대로 사람들이 이 비행기를 부를 때 흔히 쓰는 별명(애칭)입니다. 그냥 팬텀이 아니라 팬텀 II인 건 미 해군에 원래 ‘FH 팬텀’이라고 부르던 비행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각 부호를 표시할 때 쓰는 알파벳에는 아래 표와 같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AH-64E 롱보우 아파치’는 어떤 비행기일까요? 정답은 일련번호 64번인 공격용(A) 헬리콥터(H)로 이 비행기 중에서 다섯 번째 버전입니다. 원래 AH-64는 그냥 ‘아파치 헬기’였는데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애칭에 ‘롱보우(Longbow)’라는 표현을 더했습니다. 이렇게 현실에서는 쓸 수 있는 모든 부호를 다 쓰는 대신 ‘이 비행기를 특정하는 데 꼭 필요한 부호 + 별명’ 형태로 쓰는 일이 더 많습니다.

2007년 이라크 바그다드 상공을 날고 있는 AH-64 아파치 두 대. 미 공군 홈페이지
2007년 이라크 바그다드 상공을 날고 있는 AH-64 아파치 두 대. 미 공군 홈페이지

일련번호는 원칙적으로는 개발(디자인) 허가 순서를 따르지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T-50 골든이글’에서 50은 쉰 번째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 공군 50주년 기념이라 50입니다. 임무가 바뀔 때 일련번호가 그대로 따라가는 일도 많습니다. T-50을 기반으로 개발 중인 공격기는 A-50입니다.

T-50은 개발 초기에는 KTX-2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K는 한국(Korea)에서 만들었다는 뜻. 한국은 미국 영향을 받아 무기 이름에 이름을 붙일 때 이렇게 미국 스타일을 따르면서 K를 덧붙이고는 합니다. 단, K는 위치가 고정은 아닙니다. KF-16은 앞에 K를 쓰는데 F-15K는 뒤에 K가 붙습니다. (설마 TX-2가 무슨 뜻인지 모르시지 않겠죠? 여기서 X는 아직 실험·Experimenta 중인 기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제작한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 골든이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공
한국에서 제작한 초음속 고등 훈련기 T-50 골든이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공


이렇게 임무에 따라 비행기를 구분하기 때문에 원형이 같은 비행기가 제식명칭은 다를 때가 있습니다. 보잉 747이 그렇습니다. 에어포스원은 위에서 보신 것처럼 VC-25이고, 핵전쟁 등이 일어났을 때 ‘공중지휘소’로 활용할 기종에는 E-4라는 제식명칭이 붙어 있습니다. 또 YAL-1이라고 부르던 탄도 미사일 요격기도 있었습니다. 미국 국방부에서 2014년 이 비행기 개발 계획을 취소하면서 YAL-1은 끝내 시제기를 뜻하는 Y를 떼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에어포스원(위)과 나란히 날고 있는 E4-B 나이트워치. 미 공군 홈페이지.
에어포스원(위)과 나란히 날고 있는 E4-B 나이트워치. 미 공군 홈페이지.


이 일련번호는 다른 기종과 구분하는 게 제일 큰 목적이기 때문에 특정 기종이 너무 유명하면 그 번호를 건너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B-52가 폭격기 대명사라 미군에서 X-52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13을 불길한 숫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13도 기피 번호입니다.

●다른 무기에 붙는 숫자는?

이 정도 되면 다른 무기에 붙는 숫자도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K1 전차는 한국(Korea)에서 처음 만든 전차라는 뜻입니다. 이 탱크 다음 모델은 K1A1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A는 ‘Alteration(개조, 변조)’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K1보다 K1A1이 성능이 더 뛰어나겠죠?

2014년 호국합동상륙훈련에서 해안가에 상륙 중인 해병대 소속 K1A1 전차. 포항=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2014년 호국합동상륙훈련에서 해안가에 상륙 중인 해병대 소속 K1A1 전차. 포항=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한국군이 1968년 이후 미군에서 지원받아 현역 군인이 썼고, 지금도 예비군 훈련을 가면 쓰는 소총 역시 M16A1이 제식명칭이었습니다. 현재는 M16A4까지 나온 상태죠. 이럴 때 M은 그냥 모델(Model)이라는 뜻입니다. M16 이전에 예비군의 동반자였던 칼빈(Carbine) 소총은 (다들 잘 아시는 것처럼) ‘에무완(M1)’입니다.

이런 보병 장비에도 우리가 이미 살펴본 영어 약자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K1 기관단총에 이어 만들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K2 소총은 XB1부터 XB7까지 거치고 나서야 K2가 됐죠. 이때 B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든 B형 소총을 바탕으로 했다는 뜻입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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